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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un 20. 2021

브랜드텔링에도 도슨트가 필요하다 (ft. 롤리폴리꼬또)

마케터의 공간여행, 오뚜기

* 오뚜기 롤리폴리꼬또의 3번째 글입니다.


확실히 이 여행에 함께 동행한 건축 디자이너 P는 공간의 의미를 더 세밀하게 알아차리고 설명했습니다. '잘 만들었네'로 끝날 감정선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다가왔죠. 공간에서 진심이 느껴졌기에 오뚜기에게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신 사진을 찍는 건축 디자이너 P에게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습니다.

P: "굳이 오뚜기라고 말 안 해도 공간 전체가 말하고 있는 것. 천장에 매달린 오뚜기 닮은 오브제만으로 은근히 드러내는 것.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나: "오뚜기 찐팬이시쟎아요. 혹시 아쉬웠던 것은 없으세요?"

P: "굳이 찾자면... 읽을거리가 없는 것? 오뚜기 광팬이라(하하)... 함태호 회장님의 살아생전 철학이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엿볼 박물관 같은 장소가 어디 한 켠에 있지 않을까 했죠."


브랜드숍이라고 너무 브랜드브랜드 하는 것은 나를 쫓아다니는 광고만큼이나 피로가 쌓이는 일입니다. 나도 롤리폴리꼬또의 단아하고 조용한 소통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디자인 회사가 컨셉팅했기에 이렇게 심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건축가 P가 내게 설명했듯, 조금만 그 특별함을 드러내 주면 어떨까 생각했죠. 아주 조그마한 힌트를 말이죠.





미술관에는 도슨트가 필요하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는 미술관에서 누가 작품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어떤 포인트로 감상을 해야 할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감상 포인트와 작품의 뒷배경까지 얘기해주어야 아! 내가 루브르에 잘 다녀왔구나 하는 뿌듯함을 얻어갈 수 있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도슨트가 필요합니다. 도슨트는 적당한 시점에 이야기를 뿌려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마케팅에도 도슨트가 있습니다. 적당한 시점에 표식으로, 텍스트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그리고 배너형이나 표지판, 참여형 프로그램의 다양한 형태로 슬쩍 단서(clue)를 남깁니다. 그 머티리얼이 아날로그일 수도 있고 디지털 일 수도 있죠.




과하지 않은 도슨트


고객은 케이브(동굴)를 통해서 레스토랑에 입성한 후부터 그 여정을 시작합니다. 음식문화를 경험한 고객은 마법처럼 다음 경험이 열리게 되어 있죠.


사실 우리는 이 공간의 단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투에 세련됨과 편안함을 느낀 동시에 살짝 방황했습니다. 위층에 방문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싸인이 없었기 때문이죠.

 

화장실을 가려고 들어간 복도의 계단에 이 전체 공간을 소개하는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한참을 구경했죠. 이 영상의 전시 위치만 바꿔주어도 다음 공간으로 고객의 등을 슬쩍 밀어주는 좋은 넛지가 될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슨트가 좋기는 합니다만, 너무 남의 설명만 듣다 보면 나의 경험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슨트는 모든 작품을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작품과 남겨지는 시간을 위해 포인트를 짚어 설명하는 것이죠.


공간에서의 고객경험여정(Customer Experience Journey)도 맥락에 맞게 슬쩍 키워드를 밀어 넣는 도슨트가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고객이 그 키워드를 발견해줄지에 따라 도슨트는 그 형태를 달리합니다. 마치 게임에서 모험 중인 주인공에게 게임 바깥에서 길잡이 아이템을 하나씩 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길라잡이 지팡이, 목적에 따라 빛을 발하는 약물, 참여형 미션지 등이 필요한 순간에 쥐어집니다. 고객경험의 설계에는 아이템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무엇을 쥐어줄지, 어떻게 발견하게 할지 설계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야기가 전시되는 박물관


초입에 문을 열면 진라면과 오뚜기 굿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층에 굿즈 공간이 별도로 있지만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는 브랜드를 좀 더 노출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초입에 굿즈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던 톤 앤 매너와는 다르게 다소 강한 어투로 <오뚜기>라고 말하는 듯 느껴집니다. 소설을 써보자면, 누군가 Top에서 '너무 브랜드가 안 드러난다'는 말 한마디에 진라면이 전시되었을 법한 위치입니다. 유럽 빈티지 펍 느낌의 레스토랑에서 카카오프렌즈 굿즈는 잘 어울리는가 라는 느낌이었죠.


초입 공간에 맥락에 맞는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면 어떤 것이 들어가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 보게 될까요? 초입은 주문 키오스크가 있고 테이블이 많지 않아 주문 후 Bar에서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둘러볼만한 위치입니다.


음료수를 펍에서 마시며 음료수를 펍에서 마시며 레스토랑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레스토랑의 모습, 사진작가 박우진 @Brique


건축가 P와 나는 사람들이 어디에 서서 기다리는지, 기다리면서 눈길을 어디에 두는지 살펴보며 이 공간이 <오픈 박물관> 형태로 운영되면 어떨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오뚜기 역사를 만든 기계 부품들, 진라면의 면발에 담긴 이야기, 환경을 생각하는 포장 등 내부만 알고 있는 스토리는 진라면을 전시하지 않아도 은근하게 <오뚜기>라고 말할 수 있죠. 매력 있는 이야깃거리는 확산됩니다. 오픈 박물관을 시즌제로 운영해봐도 좋겠군요. 전시 내용이 바뀐 후 찾아온 재방문자는 이미 오뚜기에 대한 친근감이 형성되어 있을 겁니다.


사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고 다 만들어진 것을 평가하는 건 쉬운 법이죠. 그럼에도 롤리폴리 꼬또를 여러 번 방문한, 진라면 순한 맛 찐 팬으로서 오뚜기의 숨겨진 속 이야기 들을 알아가고 싶어 집니다. 나무위키에서 말고 이곳에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공간으로 풀어낸 오뚜기 브랜드숍, 롤리폴리 꼬또를 살펴봤습니다.



백색의 세라믹 오브제, 구매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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