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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09. 2024

3월 8일(7시 27분) 씩씩이가 하늘의 별이 되었어요

씩씩아. 잘가

이 글은 씩씩이를 떠나보낸 다음날인 3월 9일에 쓴 글이다.

브런치에 썼던 글 중 '반려견 안락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도 올렸는데, 어느 분이 죽음보다 더한 통증으로 안락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을 주인과의 마지막 교감을 위해 견디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주인을 위한 거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댓글에 별도의 의견을 달지 않았다.

글에 썼다시피 피치 못해 안락사를 선택한 분들의 뜻을 존중하고, 각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 상황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견주의 고통 또한  당사자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씩씩이를 안락사로 떠나보내지 않은 것이 정말 나를 위한 결정이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나 역시 투병기간 동안 주변 지인들에게서 안락사를 유 받았다.


하지만 나는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씩씩이가 삶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씩씩이는 밤새 통증으로 잠 못 이루고 곡기도 끊은채 매일이 고비였던 시기에도 산책을 했다.

정확히 무지개다리 건너기 3일 전까지 산책을 했다.

그리고 산책만 나가면 통증으로 밤새 괴로워한 녀석이 맞나 싶을 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 냄새도 맡으며 즐거운 산책을 했다. 또 유일하게 산책할 때만 기저귀를 풀수 있었다.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때마다 씩씩이에게서 삶에 대한 단단한 의지를 보았다.  

수의사샘은 산책이 도파민, 엔도르핀을 분비해 통증을 줄여주는 듯 하니 할 수 있는 한 해주는 게 좋다고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댓글처럼 나만 위했다면 안락사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8개월 투병을 함께하며 나 또한 심적으로, 신체적으로도 극한의 고통 속에 있었다.

자식과도 같은 녀석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통증으로 신음을 내지르는 녀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힘을 내야 했던 이유는 씩씩이 때문이었다. 씩씩이가 산책으로 삶의 의지를 보이는 이상 녀석의 곁에서 함께 고통의 시간을 겪으며 케어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녀석이 삶을 지속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씩씩이도, 나도 서로 너무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는 사실을....


2024년 3월 9일, 씩씩이를 떠나보내고


세상에 하나뿐이던 내 새꾸, 내 강아지, 내 아들이자 동시에 내 친구이기도 했던 씩씩이가 어제 아침 하느님 품으로 갔다.


새벽 두 시부터 깨어 내 새끼 힘들게 호흡하고 생의 마지막 안간힘으로 힘겨워하는 모습을 고통 속에서 지켜보다 얄궂게 졸음이 쏟아져 잠시 깜박 졸았는데 꿈에 선명한 십자가가 보였다.

꿈속에서 십자가를 봄과 동시에 이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는데 새벽 3시 반이었다.


꿈속 십자가를 통해 씩씩이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씩씩이와 내가 함께 겪어내야만 했던,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그럴 수 없었던 8개월 투병의 시간.


십자가를 통해 삶에 할당되었던 고통과 고난을 모두 감당하고 나서야 인생 한 페이지의 묵직한 과제 하나를 완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사랑했던 씩씩이의 투병과정을 함께하며 절절히 느껴야만 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모두 겪어내야만 배울 수 있었던 인생의 과제....


씩씩이는 가족들의 배웅 속에 편안한 얼굴로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엄마만 바라보았다.

내 새끼의 심장이 멈추고 부드러운 털로 덮여있던 따뜻한 몸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가도 이상하리만큼 아프지 않았다. 그런 변화쯤은 내 새끼가 그간 병고로 겪은 극심한 고통에 비함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씩씩이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떠나보낸 슬픔보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될 만큼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온전히 겪어낸 내 새끼.

고통 와중에도 엄마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내 새끼.


너무너무 기특하고 고맙고 존경스럽다.


씩씩이에게 마지막 삶의 기쁨은 떠나기 3일 전까지 했던 산책과 가족들의 애틋한 사랑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독한 암으로 인해 맛있는 음식과 간식은 씩이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사랑하는 내  아가.


가 떠난 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사무치게 보고 싶어.

이렇게 진한 그리움의 시간에 엄마는 이 글을 쓰고 있어.

작은 생명체였던 너와의 만남으로 엄마는 평생 단단하게 굳어있던 심장이 말랑말랑하게 변하는 기적을 험했어.


너의 투병을 지켜보며 아팠던 마음에 시작한 글쓰기가 이젠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

너와 함께한 그 어떤 보석보다 더 반짝였던 9년이란 시간 중 마지막 8개월은 엄마에게 악몽이자 현생에서 미리 맛본 지옥이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 배운 인생의 교훈이 엄마의 남은 삶을 풍요롭게 성장시켜 줄거란 사실도 알고 있어.


사랑하고 고맙고 또 미안한 내 아가야!  

오늘 하루도 그리움의 시간 가득 머금고 잘 지내볼게.


하늘에서 엄마 잘 지켜봐 줘.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아가야♡♡♡


## 씩씩이가 보고 싶을 때 그림을 그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씩씩이는 여전히 제 손 끝에, 제 마음안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씩씩이에게 쓴 편지글과 단상글로 '반려견에게 사랑을 배우다2' 연재글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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