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씩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5일 전 쓴 글이다.
2월 12일 마지막 투병기를 쓴 이후로 씩씩이의 상태가 악화일로였기 때문에 투병기록을 남길 여유가 없었다.
씩씩이는 방광암을 진단받고 하루하루가 고비였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였던 상태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 역시 세상을 뜨기 전 잠시 동안 컨디션이 좋아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시간은 생의 마지막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극심했던 통증도 잠시 거두어 가준다.
줄어든 통증에 안도하며 겨우 정신을 추스르면 이 시간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애틋한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간절히 원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두었던 경험을 시도하기도 하며 내 삶을 내 의지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씩씩이도 이 시간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았다.
나 역시 씩씩이가 한결같이 보내준 사랑에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한번뿐인 우리의 삶!
시기만 다를 뿐 언제 가는 꼭 한 번은 떠나야 하는 이 삶에서 남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대가로 온갖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쥔다 하여도 내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 없다면 우리 삶은 의미가 없다. 흔적은 흔적일 뿐이라고, 기껏해야 누군가의 기억에 잠시 저장되었다가 곧 소멸되는게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씩씩이와 나누었던 사랑은 세상 어딘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바람에 힘을 실어 누군가의 땀을 식혀주며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줄 거라 믿는다.
이 세상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랑의 마음, 사랑의 에너지가 모여 순환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하고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사랑의 가치는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2024년 3월 3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씩씩이가 설연휴 이후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이제는 간식을 일절 먹지 않고 모든 곡기를 끊었다.
2일 정도 지켜보다 도저히 지켜만 볼 수 없어 강아지죽으로 강제급여를 시작했다.
이제 강제급여 시작한 지 보름정도 되어간다.
강제급여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내주자 수십 번 다짐했지만 눈앞에서 생명의 빛을 잃어가는 녀석을 두고 나는 이성적 판단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아니 좀 더 일찍 강제 급여를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미 생명의 시한이 정해진 녀석이기에 이 모든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녀석을 마냥 손 놓고 떠나보낼 수 없다.
몸무게도 1킬로 정도 짧은 기간 동안 훅 빠졌다.
지금은 거의 누워서만 지내고 산책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50미터에서 100미터 정도 걷는다.
투병동안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엄청난 병고를 겪고도 지금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특하고 대단하다.
생명은 하늘에 뜻이라지만 사람과 마찬가지로 강아지도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지 않는 이상 기적처럼 하루가 보너스로 주어지나 보다.
이제와 돌아보니 매일이 고비였던 투병기간 동안 씩씩이와 함께한 모든 일들이,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
가느다란 생명의 호흡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씩씩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통 없이 편안하게 하느님품에 안기도록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
씩씩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봄은 오고 꽃도 필 것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조여 오지만 이제 더 이상 씩씩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씩씩이와 이별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며 아름다운 기적을 완성해야 한다.
너무 두렵고 무섭지만 겪어내야만 한다.
이별을 감지하고 있을 씩씩이게 남은 가족들 걱정까지 시키지 않도록, 또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칫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도 최대한 웃어주려고 한다.
하느님. 제가 씩씩이와 상실의 아픔을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씩씩이가 고통 없이 잠들 듯 당신의 따뜻한 품에 안길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