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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ug 07. 2024

아름다운 봄날에  아름다웠던 내 아들 씩씩이에게

이 글은 씩씩이가 떠나고 16일째 되는 날인 2024년 3월 24일에 기록한 글이다.

2023년 12월 아름다운 첫눈이 꽃잎 흩날리듯 지천에 뿌려지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소복이 쌓이던 날 씩씩이는 한참 투병 중이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으레 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이고, 겨울의 끄트머리에는 이제 지겨우니 그만 좀 봤으면 좋겠다고 궁시렁거리겠지만 작년 12월의 첫눈은 내 생애 맞은 첫눈 역사상 유독 반가웠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날의 첫눈이 유달리 특별했던 이유는 씩씩이가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맞을 첫눈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예감하고 예측하다 거의 확실시되는 마지막으로 자각되는 순간, 평범한 일상으로 치부되던 소소한 일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의미부여 된다. 그래서 그날의 첫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애절했다.  


세찬 눈발이 세상을 장식하자 씩씩이를 담요로 감싸 안아들고 한달음에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겨울의 한기를 잊은 채 씩씩이와 나는 한참을 서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겨울 풍경을 지켜보았다.

담요 안 따뜻한 온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녀석을 품에 꼭 안은 채 첫눈을 함께 볼 수 있음에, 이때까지 녀석이 살아 있음에, 겨울왕국으로 변한 아름다운 세상을 한쪽 눈으로 나마 볼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씩씩이와 맹 추위를 떨친 겨울을 함께 보낼 수 있어 감사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나 보다.

다시 2024년 봄을 함께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씩씩이는 환한 봄꽃을 다시 보지 못한 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024년 3월 24일, 아름다운 봄날에 아름다웠던 내 아들 씩씩에게


씩씩 아. 엄마가 사는 이곳은 드디어 개나리도 매화도 환하게 꽃을 피웠어.

이 봄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오늘은 새롬이와 집 앞 초안산공원에 산책을 다녀왔어.

새롬이도 따뜻해진 날씨에 기분이 좋은지 제법 잘 걸었어.

공원으로 온 동네 강아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산책을 많이 나왔더라고.  


갑자기 생각난다.

지난겨울 베란다에서 온 세상이 하얘지는 기적의 마법을 부렸던 첫눈을 너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너무 행복했어. 그 겨울의 행복이 넘치도록 과했는지 아름다운 봄날을 너와 함께 맞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는 봄의 시샘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나 봐.


엄마는 봄이 가장 좋아.

매서운 추위에 주눅 들어 잔뜩 웅크렸던 몸과 마음이 봄을 맞아 활짝 는 꽃잎의 용기에 힘입어 덩달아 기지개 켤 수 있는 봄이 너무 좋아. 이렇게 화창하고 화사한 봄날 그렇게도 기다렸던 봄꽃들이 지천에 피어 너무 행복한데 엄마는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인데 엄마 마음은 눈부시도록 시리구나.


너와 함께 이 아름다운 봄을 맞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도 틀림없이 따뜻해진 날씨에 잔뜩 신이 나 꼬리를 힘껏 쳐들고 강아지 살인 미소 장착한 채 동네방네 구석구석 행복 바이러스 내뿜으며 활보하며 다녔을 텐데 말이야.


지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하는 씩씩 아.

엄마가 적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여태껏 슬프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인간의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정도의 슬픔이었나 봐.


그런데...

너와의 이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을 표현한 모든 단어와 문장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온전히 담아낼 수가 없을 거 같아. 이렇게 영혼이 갈라지는 듯한 깊은 농도의 슬픔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씩씩 아.

그곳에서 엄마가 네 이름처럼 씩씩하게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를 위해 기도해 줘.

분명 엄마가 우울해하고 슬퍼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걸 알기에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으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어.


오늘은 고통스러웠던 긴 겨울을 견뎌내고 오래간만에 다시 맞은 봄날이 너무 아름다워서 네 생각이 더 날 수밖에 없었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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