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이와 426일째, 새롬이와 158일째 이별 중
퇴근하고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운동 겸 산책을 나간다.
강아지를 키웠던 14년간, 녀석들과 함께 유지해 온 삶의 루틴으로 녀석들이 떠난 후에도 습관이 되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웬만하면 거르는 법이 없다. 동네 어귀를 산책하며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도 구경하고 등산로에 조성된 사시사철 의젓하게 자리 잡은 무성한 수목과 봄을 맞아 화사하게 피어난 꽃나무들에게 무심히 말을 건네다 보면 운동 이라기보다 명상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강아지들 없이 혼자 하는 산책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문득문득 함께 산책하던 녀석들의 모습이 동네 풍경 속에 겹쳐지곤 한다. 녀석들과 산책하던 모습을 누군가 훔쳐본다면 '세나개'에 출연해 보라고 넌지시 권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씩씩이와 산책할 때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강아지인지 헷갈렸다. 언뜻 보면 씩씩이가 사람인 나를 산책시킨다 할 정도로 녀석은 늘 거침없이 앞장서 걸었다. 산책 코스 또한 내가 아닌 녀석들이 정했다. 녀석들의 그날그날 기분 따라 작동하는 코비게이션 코스가 곧 그날의 산책 코스가 되었다.
가끔씩 반려견을 키우며 일상을 공유하는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우리 아기들도 영상 속 견주처럼 뛰어난 훈련 스킬을 가진 주인을 만났더라면 꽁꽁 숨겨진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혼자 아쉬워하기도 했다.(물론 지극히 개인적 의견으로 세상 모든 부모가 영유아 시기의 자녀를 천재로 오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임)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잠시일 뿐 녀석들에게 뭔가 조건을 걸고 간식으로 보상하며 훈련을 시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만 해당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츄 녀석들에게 간식이란 조건이고 뭐고 눈 멀고 귀 멀고 코 멀게 만드는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게' 만드는 마성의 힘을 가진 '절대반지' 이상이었다. 훈련을 위해 명령을 내리면 녀석들이 초집중하며 청각세포를 동원해 듣고 따라야 하는데 숨겨놓은 간식에 눈, 코, 입, 귀가 쏠려 간식 찾기에만 혈안이 되니 아무리 유명한 훈련사의 훈련법을 따라 해 봤자 무용지물이었고 눈에 콩깍지가 씐 나는 또 그런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러워 간식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새롬이는 앞발 달린 강아지라면 대부분 할 법한 필수 개인기인 '손'하며 손을 내밀면 앞발을 내어 주는 재롱도 잘하지 못했고 씩씩이만 겨우 엄마 체면 세워준다고 곧잘 했다.(씩씩이가 '손'을 했을 때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내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씩씩이를 키웠던 이전 주인이 훈련시켜 놓은 덕분이었다.(일명 사교육)
결국 교육적 마인드가 없는 무능한 주인을 만난 녀석들은 잠재적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 채 그저 사랑만 듬뿍 받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단언컨대 우리 집 녀석들의 천재성을 엄마인 나는 잘 알고 있다.(단, 나만 알고 있다) 그저 숨겨진 능력을 세상에 내보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우리 인간도 죽을 때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명예를 기리기 보다 고인이 베풀고 나누었던 사랑을 마지막 가는 길에 추억하며 애도하질 않나.녀석들은 천재견으로 명성을 떨치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평생 남을 사랑과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었고 그것만으로도 녀석들은 충분히 성공한 견생이다.
덩달아 나도 소원이 생겼다.
내가 녀석들을 평생 기억해 줄 거듯이, 내가 죽고 나서 나를 평생 기억하고 가끔씩 떠올려줄 딱 '한 사람'만 있다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