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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1. 2024

2023년 12월 6일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

모든 약물 투여를 중단하다.

12월 4일 아침부터 씩씩이에게 주던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투여를 모두 중단했다.


기존 약 용량으로는 소변볼 때마다 통증으로 내지르는 녀석의 신음소리를 사라지게 하지 못했다. 너무 안타까워 통증을 줄여주고자 수의사샘 처방대로 스테로이드와 진통제의 용량을 증량해 엊그제 저녁부터 투약했는데 그날 밤에 씩씩이는 더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아마도 암으로 인한 통증 플러스 약의 부작용으로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 헥헥거리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를 반복했다. 다량의 소변 배설량만큼 수분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주어야 함에도 몸이 괴로운지 물조차 마실 기력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탈수 증상까지 겹쳐 빈호흡과 호흡곤란이 온 듯했다.


나는 당분간 씩씩이에게 치료적 약물 외에도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위한 어떤 약물도 투약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모든 약물을 중단한 지 2일 차이다.

씩씩이는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호흡도 자연스러워졌고 입맛도 조금은 돌아왔는지 사료도 몇 알 먹었다.


소변에서 최초로 혈뇨가 발견된 4개월 전부터 지속적으로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를 함께 먹여왔다.

암으로 잠식당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금의 몸으로는 약물조차 공격 요소가 된듯하다.


어쩌면 진통제를 준 것이 씩씩이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함도 있지만 내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나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사료를 먹지 못해 평소 건강 생각한다고 마음껏 주지 못한 소고기와 닭가슴살을 주고 있고 일단 뭐든 먹어만 주면 고마운 상황이다.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곡기 끊으면 죽는다는 소리가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안락사를 요구할 일도 없이 집에서 가족구성원이 돌아가며 환자를 간호했으므로 환자 본인이 삶의 의지를 접고 스스로 곡기를 끊으면 자유의지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즉 환자 본인이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서 사망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 병원에서 음식을 못 먹어 사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이 없어 입으로 삼키지 못하면 혈관으로 영양 수액을 꽂고, 코에 줄을 끼워 맛도 느낄 수 없는 유동식을 주입한다. 호흡이 멈추면 인공호흡기를 끼워 폐를 움직이게 하고, 심장이 멈추면 자동심장충격기로 심장을 뛰게 해 놓는다.


씩씩이가 과연 이 지독한 암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씩씩이가 죽기 직전까지 앞발을 뗄 수 있다면 매일 산책을 다니고, 사료보다 더 맛있는 음식으로 녀석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것뿐이다.


통증으로 잠 못 이룰 때 진통제 대신 내 손이 약손이 되어 통증이 사라지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설명 : 2015년 유기견 보호 단체에서 씩씩이를 입양하기 전에 입양 소개 프로필로 받은 사진입니다. 씩씩이는 구조 단체에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제가 키워보니 왜 이름을 씩씩이로 지었는지 이해가 됐어요.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겁도 많고 소심해서 아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으로 숨기만 했을 거예요. 제게 입양된 지금은(아프기 전까지) 완전 자기 세상이었지만요. 저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어요. 환경이 바뀌어 적응해야 할 녀석에게 이름까지 바꿔 부르기가 미안했어요. 여하튼 씩씩이는 지금도 씩씩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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