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아닌 엄마와 '보통' 엄마
엄마와 나, 그리고 '보통'의 연결고리
씩씩이를 간병하며 마지막까지 함께한 경험은 생명의 유한함을 뼈아프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씩씩이가 투병하는 8개월 동안 지방에 살고 계신 엄마에게 자주 가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였지만 씩씩이의 상태가 하루도 장담하지 못할 만큼 위중하고 급변하는 데다 기저귀를 수시로 교체해 주어야 해 외출 자체가 쉽지 않았다. 또 밤에도 기저귀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누적되면서 체력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둘째 딸인 내가 굳이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엄마집 지근거리로 언니와 동생이 살고 있어 엄마 걱정은 잠시 미뤄 둘 수 있었다. 어쨌거나 사면초가에 놓인 씩씩이보다 엄마 수명이 더 길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어 일단 씩씩이와의 시간이 더 급했다.
강아지들이 건강할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엄마를 찾아뵙고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나는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자타공인 효녀딸로 딸 셋 중 내가 엄마에게 가장 살가운 편이다. 우리 자매들 모두 엄마에게 해소할 수 없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에게 주어진 유일한 복인 '자식복' 때문인지 언니와 동생도 엄마를 살뜰히 잘 챙기는 편이다.
엄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예술적 기질이 충만한 만큼 평생 자신의 감정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주어진 삶에 집중하며 살아오셨다.
'보통'의 엄마는 객지에 나가 살던 자식들이 고향이 그리워 찾아오면 외출했더라도 시간 맞춰 귀가해 자식들을 반갑게 맞아주겠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집에 가더라도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세상 쿨하게 외출하셨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엄마 없는 친정집을 지키며 내심 씁쓸해했다.
하지만 평생 자식들과 일정을 공유하지 않고 엄마 단독 스케줄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모습만을 봐 온지라 엄마는 왜 '보통'의 엄마와 다르냐고 따진 적도 없었다.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이 있다고 아주 어려서부터 개별화하고 분리했던 것 같다.
엄마는 우리 딸 셋이 대학 진학을 위해 처음으로 집에서 독립해 도시로 나가 살던 자취방에도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4년 동안 자취방에 문제가 생겨 세 차례 이사를 했어도 오신 적이 없다가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졸업식 참석을 위해 딸들의 주거 도시에 첫발을 내딛으셨다. 물론 자취하는 딸들의 끼니가 걱정되어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신 적도 없었다.
엄마는 방목형 내지는 방임형 부모였고 엄마라기보다는 '아빠'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런 유형의 부모를 둔 자식들은 생존을 위해 반 강제적으로 독립성, 자주성, 주체성을 별도의 교육 없이도 빠르게 습득한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에게 손 내밀어줄 사람이 없다는 차가운 현실은 아무리 어린아이일지라도 생존의 위협을 감지해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랬던 엄마가 초로의 나이를 훌쩍 넘긴 어느 날부터 변했다.
딸들에게 집으로 자주 찾아와 줄 것을 요구하고 집에 가면 외부 약속(주로 노인정 친구들과의 약속)을 일체 잡지 않고 딸들이 집에 와 있어서 못 나간다고 말씀하신다.
씩씩이 간병으로 엄마 집에 한동안 못 갔을 때도 엄마는 슬쩍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지난 추석에도 씩씩이 상태가 안 좋아 1박만 하고 간다 하니 못내 서운해하셨다.
이런 엄마의 모습이 평범한 가정에서 보아 온 '보통' 엄마의 모습이겠지만 나로서는 갑자기 '보통' 엄마처럼 변화한 엄마의 모습이 당황스럽고 낯설었다.
엄마가 갖은 고생을 해서 우리 딸 셋을 키워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반면에 자식을 둔 부모로서의 삶과 별개로 한 여자,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못지않게 양립시키며 잘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부모로서 희생만 치렀다면 더 젊은 나이부터 우리에게 집착하며 '보통'의 엄마가 아닌
'이상한' 엄마가 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지독히 고생했던 지나온 삶은 한탄하지만 자식에게 헌신하며 보통의 엄마로 살아온 분들이 주로 후회하는 '더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한탄하지 않는다. 그만큼 엄마는 주어진 악조건의 환경 속에서도 틈틈이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나름 재미나게 사셨다.
어린 시절 늘 부재중인 엄마를 그리워하고 갈망하다 좀 성장해서는 그런 엄마를 원망했지만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엄마 개인의 인생이라도 원 없이 즐기며 사신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엄마로 살면서 여자로서도 불행하고,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장성한 자식들을 원망하며 부모로서도 불행하게 사는 엄마들 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딸이자, 엄마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엄마의 삶을 총평하자면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 라도 잡은 게 어딘가! 어린 시절의 내게는 미안하지만, 엄마의 판단은 현명했다.
강아지만 신경 쓴다며 서운해하는 엄마에게 종종 했던 말을 적어보고자 한다.
"엄마. 내가 강아지한테 쏟은 정성과 사랑이 그대로 엄마한테 향할 테니 서운해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