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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5. 2024

'화성'에서 온 엄마, '금성'에서 온 딸

ESTJ 엄마와 ISFJ 딸, 그리고 공감의 연결고리

나에게 엄마는 늘 미스터리 한 존재이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화성에서 온 엄마, 금성에서 온 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와 나는 각자 다른 행성에서 온 만큼 애초부터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화성이 아닌 금성 출신이 된 이유로 엄마와 아빠 유전자 중 아빠 유전자를 더 많이 독점했거나 아니면 중간에 변이 되어 엄마의 형질과는 멀어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늘 어려운 난제였다.


가끔씩 엄마는 내가 엄마 속을 다 꿰뚫어 본다며 놀라워 하지만 그건 내가 엄마의 사고회로를 닮아서가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눈치와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랑 몇 시간만 대화해 봐도 금방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엄마가 매우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던 어느 날 기적처럼 MBTI가 찾아왔다.

나의 MBTI 유형은(정식 검사가 아닌 인터넷 약식 검사 결과) ISFJ나 INFJ를 오가는 결과가 나왔다. 그 유형의 특징들을 살펴보니 내 성향과 비슷했고 좀 더 수긍이 가는 ISFJ가 나의 공식 MBTI가 되었다.


그러다 내 평생 미스터리인 엄마의 MBTI 유형이 무척 궁금해졌다.

엄마에게 검사 항목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문항을 체크했고 검사 결과 엄마는 ESTJ였다. 엄마에게 ESTJ의 성격 특징(감정적 공감 서툼, 솔직, 고집, 신념이 강함, 지배적, 독단적, 책임감 강함, 의사표현 명확 등)을 읽어주니 엄마는 무슨 점쟁이냐면서 어떻게 본인 성격이랑 똑같냐며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MBTI 해석을 통해 내 평생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ESTJ 특징들을 살펴보니 정말 엄마의 성향과 많이 비슷했다. 최소한 우리 엄마가 화성에서 온 우주인 급의 별난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가 발견된 샘이다. 세상 어딘가에 엄마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묘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엄마의 딸로 살아오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공감능력' 부재였다.

ESTJ의 대표적 특징이 바로 '공감능력' 부족이었고 엄마는 ESTJ 중에서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매우 극단적 지점에 위치해 있는 사람 임에 틀림없었다.


기염을 토했던 엄마의 공감능력 부족 사례를 들자면 너무 많지만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어릴 때 엄마는 우리 딸 셋 앞에서 '밀가루 쇼'를 벌인 적이 있다.

내가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약을 먹고 죽는다며 종이 포장지 속 하얀 가루를 보여주었고 갑자기 그 가루들을 입에 몽땅 털어 넣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그 하얀 가루는 독약이 아닌 밀가루였고, 밀가루를 털어 넣기 전에 우리에게 엄마랑 함께 죽지 않겠냐고 일일이 물어보기까지 했다.


내 기억에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했던 것 같다. 죽으려면 엄마 혼자 죽으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 역시 공감능력 없는 엄마의 유전자가 싹을 틔우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정말 엄마가 죽는 줄 알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고 아역배우 못지않은 드라마틱한 반응에 엄마는 갑자기 일어나 배꼽을 잡고 웃었다. 또 엄마의 잦은 외출로 어린 여자 아이들만 남겨졌던 집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남자 목소리로 변조한 후 '너네 엄마 경찰이 잡아갔다'라고 장난을 쳐 전화를 받고 있던 나를 놀라 자지러 지게 만든 적도 있었다. 내 반응을 듣고 전화기 너머 엄마는 또 한참을 웃었다.


어린 시절 몇 가지 예화만 들어도 엄마는 정말 '보통의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왜 이런 잔인한 장난을 하는지, 또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불안에 떠는 어린 딸들의 모습이 왜 그리 웃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0년 전에도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큰 슬픔에 빠져 있던 내게 엄마는 개 죽은 게 뭐 그리 슬프냐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전화기 너머로 한바탕 웃었다.

그일 이후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릴 때 사건들은 그렇다 쳐도 성인이 되어 맞닥뜨린 엄마의 공감능력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최근 씩씩이가 아팠을 때도 엄마는 내 마음을 전혀 공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아픈 강아지 핑계로 자신을 자주 보러 오지 않는다고만 서운해하셨다.


이런 엄마의 영향으로 나는 '공감능력'이야말로 부모로서 가장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돈 보다 정서적 평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언행을 쉽게 하지 않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엄마의 공감 부족 사유를 혼자 분석해 본 적이 있다.

공감능력은 선척적으로 타고나는 면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면도 크므로 우선 엄마의 성장 배경에서 원인을 찾아보았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외할머니에게 모질게 매를 맞고 자랐다고 한다. 쉽게 말함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또 7남매 중 장녀였지만 형제들 간 우애가 없어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해서는 아빠와 사별의 고통을 겪은 후 친할머니와의 긴 재산 다툼 소송까지 치러야 했고 와중에 최악의 경제적 곤궁을 겪었지만 누구에게도 일절 도움을 받지 못했다.


즉, 엄마 역시 누구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엄마가 부모가 되며 다짐했던 목표는 하나, 자식만은 때리며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엄마가 신념으로 세운 목표 덕분에 다행히 매질은 대물림되지 않았고 나는 엄마에게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면 오직 생존을 위해 투쟁하듯 살아온 전사에게 왜 그리 공감능력이 없냐고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게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도 어린 우리들 때문에 죽지 못했고, 막중한 책임감과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짓누를 때면 차라리 먼저 세상을 등진 아빠가 부러웠다고 한다.


엄마는 '밀가루 쇼'를 통해 자신이 떠난 후 보일지 모를 엄마 잃은 아이들의 생생한 반응을 확인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나이 든 분들이 팔팔하던 청춘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엄마는 예외다. 젊을 적 하도 고생을 많이 해 설령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해도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어쨌거나 엄마의 공감능력 부재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반면 공감능력 없는 여장부 기질 덕분에 이제껏 죽지 않고 살아서 딸들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 정리해 본다.

엄마를 이해한다면 세상 모든 인간사를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야심 찬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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