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강아지인지라 새롬이와 씩씩이가 언젠가는 홀연히 내 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는 내내 하지 못했다. 씩씩이가 암과의 사투를 벌이며 생명력이 꺾일 때마다 주변에서는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 역시 씩씩이가 떠난 빈자리가 공포 수준으로 두려웠기에 조언대로 어떻게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씩씩이와의 이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슬 퍼런 칼날에 살이 베이듯 아파 그저 씩씩이가 떠난 후 나의 일상은 어떻게 변할는지, 이제는 가물거리는 강아지를 키우기 전 시절을 떠올려 일상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대신했다.
그런데 정말 반려견과의 이별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인생의 화폭에 함께 그림을 그려온 가족 같은 반려견과의 이별에 과연 마음의 준비란 게 가능은 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평소 남다른 불안지수로 불확실성이 큰 사안일수록 최선을 다해 철통 대비를 해놓는 사람이었지만 그것만은 불가능했다.
씩씩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래시계 속 모래 빠지듯 줄어들고 있었고 어떻게든 시간을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애걸복걸 매달리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씩씩이의 남은 기간 동안 정말 죽어라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씩씩이 곁을 지키는 동안 14년간 우리 집 터줏대감인 새롬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 했다.
새롬이 또한 14살 노견으로 시각손실과 척추디스크를 앓고 있었지만 당장 생명이 위급한 질병은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니 씩씩이가 아팠던 8개월 동안 새롬이는 더 많이 노쇠해져 있었다. 사람이 보낸 8개월과 노견이 보낸 8개월은 질적으로 달랐다. 씩씩이를 보내고 정신없이 슬퍼하는 동안에도 새롬이의 시간은 가속이 붙어 흘렀고 체감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였다. 이렇게 씩씩이를 보낸 슬픔에 힘들어하다 새롬이를 보낸다면 감당할 수 없는 후회가 평생 발목을 잡을게 뻔하다.
펫로스 증후군을 앓을 시간이 내게는 없다.
지쳐있을 시간도 없다. 씩씩이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줄거라 믿는다.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만 있을 뿐이다. 지금은 새롬이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새롬아. 엄마가 미뤄놓은 8개월의 시간을 만회할 기회를 주라.
새롬이의 '시간'에게 정중히 요청하고 싶다.
씩씩이에게 주었던 사랑의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빛의 기운이 새롬이에게 닿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