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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2. 2020

일본 동네 서점까지 진출한 한국 책

외국에서 살아도 사실 먹는 거, 입는 거 크게 불편한 게 없다. 스스로 한류 열풍의 수혜자라고 느끼는데, 그 정도로 한국 음식은 물론 드라마, 영화 등등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한국을 느끼면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을 들자면 바로 한국 책 찾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한국에선 일본 소설, 에세이, 실용서 등등 다양한 책들이 오래전부터 번역 출간되어 왔고 교보문고만 가도 원서를 어렵지 않게 구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 책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니 한국 원서는 어디 헌책방에서 연구서적을 찾지 않는 이상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사이 전자책이 많이 발간된 덕분에 이제는 일본에서 굳이 한국 책을 찾지 않아도 충분히 e북으로 한국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게 있었다. 한국 문화 향유층의 관심사가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지만 그들의 관심사가 드라마, 케이팝, 뷰티, 패션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그런 것들을 계기로 다양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할 때 소비 중심의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는 게 사실이다. 그런 관심사도 한국 사람으로서 대단히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마음 한편엔 한국엔 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많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일본에서 한국 문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책만을 전문적으로 번역, 출간하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많은 출판사들이 한국 책을 출간하고 있고, 서점 직원들이 뽑은 서점 대상 번역 책 부문에 <아몬드>가 1위를 차지하면서 일본 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작년부터 서점에서 한국 번역 책을 간간이 볼 수 있어서 그때마다 신기했는데 이제는 동네 작은 서점에까지 진출했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을 보면 초반엔 소설 중심이었다가 요즘은 에세이가 많아진 것 같다. 

가운데 칸 왼쪽부터 <아몬드>, <82년생 김지영>, <그래도 괜찮은 하루>
윗줄 왼쪽 4번째부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 건 작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당시 직장 동료가 불쑥 <82년생 김지영>을 아냐고 물어왔다. 참고로 그 친구는 케이팝이나 한류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류이다.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너무 의외의 화젯거리가 던져져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일본인도 읽었다는데 내가 안 읽을 순 없지 싶어서 부랴부랴 전자책으로 김지영을 읽고는 친구와 의견을 나눴었다. 그 이후에도 평소 일본 소설에 관해 함께 얘기를 나누던 일본 언니한테서 김지영 너무 잘 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는 김지영이 갖는 화제성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나 보다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년 남짓, 티비와 라디오, SNS에서 한국 책이 자주 회자되는 걸 보고 한국 문학이 일본 출판계에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는 걸 실감했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케이팝 등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기존의 한류팬들뿐만 아니라 비한류팬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한국과 일본이 사회 전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이다 보니 소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늘어난 것 같다. 또 한편으론 한국 문화에 대한 단순한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탐색하고 번역하여 소개해온 기존 한류팬들의 역할도 큰 것 같다. 한국 문학이 앞으로 일본에 어떤 식으로 정착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한국 문학이 매개가 되어 작게는 나의 인간관계에 새로운 대화 소재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크게는 앞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문학 열풍의 부끄럽지 않은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열심히 공부해야겠지만. 


일본 문학을 공부할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문학에는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문화적 배경과 별개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나라나 문화가 달라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문학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다양해진다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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