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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Oct 07. 2023

1화를 끝으로 막을 내릴것인가

SeRA  운영자

안녕하세요, SeRA 운영자입니다. 

서울 리뷰 오브 아키텍쳐 첫편이 어제 업로드 됐습니다. 아주 재미없기 짝이없는, 바짝 마른 한여름 극심한 가뭄속의 논두렁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이 좀더 캐주얼하고 부드러워야 하지 않겠냐고 편집자에게 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든 편집 권한을 일임하기로 약속한만큼 저 역시 더 고집부리지 않았습니다. 성숙한 운영자로서 편집자를 존중해 주는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설사 그 글을 열명, 아니 너댓명, 아니 한두명도 읽지 않게 될지라도 말이죠... 쩝. 



기왕 이렇게 된것, 편집자 세라가 왜 그런 메말라빠진 글을 고집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과 (추론에 가까운) 거기에 담긴 나름의 가치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계동 이잌에 대한 세라의 리뷰는 일종의 'Ekphrasis'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파벳으로 된게 영어도 아닌듯 보이면 뭔가 더 그럴싸하고 있어보이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그래서 저는 이 엑프레시스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 단어는 주로 예술 영역에서 하나의 오브제를 두고 객관적인 관찰을 기반으로 '보이는 것'들을 묘사한 글을 뜻합니다. 듣고보면 이런 단어가 왜 필요하냐 싶을만큼 보잘것없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기술하는 일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과 비유가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이탈리아 어느 도시를 여행하면서 광장에 보이는 분수를 발견했다고 합시다. 와 저 분수 더럽게 멋있네! 하는 말은 엑프레시스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기술방식입니다. 멋있다는건 개인의 감흥이지 보이는 그대로의 관찰된 사실에 대한 기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대로 쓴다는건 나와 타인, 즉 눈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적어도 동의할 수 있는 사실에 기반해 쓰는 일입니다.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동의의 기반없이 좋은 리뷰가 이뤄지는건 불가능하다는게 제가 이 나이에 전재산을 털어서 배운 바였습니다. (또르르.)


그러니까 세라 편집자는 재미는 더럽게 없을지 몰라도 제대로된 관찰을 기반으로한 엑프레시스를 쓴 셈입니다. 여기서 재밌는건 그 글이 엑프레시스 단계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글을 통해서 세라는 계동 이익 건물의 디자인에 '세월의 메이크업'이라는 성격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주관적 해석 혹은 의미부여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제 생각에 그 경계는 사실의 취사 선택에 있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하잘것 없는 머그컵 하나라도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끝없이 계속할 수 있는게 객관적 관찰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유한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 얽메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관찰을 멈춰야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고, 또 추출 가능한 무수한 관찰의 결과 중 유한한 몇가지를 선별해야만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세라 편집자가 선택한 관찰이란 [건물의 캐노피]와 [출입문 옆 명패], [벽돌벽], 그리고 [기둥없이 탁 트인 내부공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네가지의 주요 사실을 바탕으로 '세월의 메이크업'이라는 주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관찰의 편집과, 그런 편집으로 빚어진 오명인지도 모릅니다. 과연 이 건물을 애초에 디자인하고, 또 최근에 리모델링한 디자이너는 세월이라는 주제에 골몰했을까요? 전혀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최초에 벽돌집을 디자인했을 그 누군가에겐 벽돌벽 방식이 기술적으로도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건축물을 리뷰한다는 건 그 건물의 원본을 필연적으로 어그러뜨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념적으로 말이죠. 실제로 그러면 잡혀갑니다. 


관찰을 바탕으로한 리뷰는, 개념적으로, 이 건물의 원본을 무너뜨린 뒤, 새로운 시각으로 건물의 개념을 쌓아올리는 일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개념적 재건축입니다. 세라 편집자는 어제자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계동 이잌 건물을 새롭게 지어올렸습니다. 물론 리뷰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와 비슷한 건물이 마음속에 지어졌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건 읽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을겁니다. 과연 세라는 본인의 글이 이렇게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별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번째 글을 쓰려고 할까요. 첫번째 글도 겨우겨우 마지못해 썼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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