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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Oct 15. 2023

과한 생각으로 인한 사설 및
세번째 글에 대한 예고


운영자 가소로

 얼마전에 교수님 댁에서 졸업작품 후 파티를 하면서 Perspecta라는 매거진에 대해서 얘기한 기억이 납니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글들이 쓰여지는 매우 학술적인 출판물입니다. 물론 일반 대중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특히 이론적인 부분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존재감이 확실한 매체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예일 건축대학에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출판과 편집이 이뤄지는 잡지라고 하더군요. 입학 시기부터 학생들이 글을 제출하기 시작해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리뷰, 선정 및 수정, 기타 편집 과정을 거쳐서 출판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교수들의 글도 포함되고요. 


서울 건축 리뷰라는 매거진을 시작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시작의 이유를 물을만큼 유구한 역사가 있는것도 아니죠, 이제 두번째 리뷰를 마쳤고, 잡스런 사설을 담은 글이 네편이나 섞여있으니까요. 편집을 맡고있는 세라와 디자인을 담당하는 하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세번째 주제는 무엇으로 정하는게 좋을지, 또 우리는 이 매거진을 왜 시작한건지에 대해서 말이죠. 사실 제가 일방적으로 시작하고선 세라 하라에게 매달리듯 부탁한 일이라 그 둘에게 특별한 생각이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학교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느끼는 부분이지만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오히려 시야가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진행중인 미술관 디자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한 파트너와 팀을 이뤄 진행중인 프로젝트에서 저는 꽤 욕심을 많이 내면서 이런저런 자료조사와 함께 건물의 구성과 형태를 어떻게 꾸려갈지 분주했습니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후회없는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마음이 컷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또 건물이 들어설 사이트에 대한 분석과 자료수집 내용이 방대해질수록 건물의 디자인은 복잡해져만 가는게 제 눈에도 보였던겁니다. 


그에 반해서 제 파트너의 디자인안은 아주 단순명료했습니다. 제가 공유한 다이어그램과 일련의 자료를 바탕으로 허탈할만큼 직설적으로 풀어낸 모양이 이래도 되나 싶을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집합 A와 집합 B 사이의 교집합으로서의 공간을 찾아본다는 개념적인 다이어그램이 있다고 해보죠. 그리고,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두 공간으로서 작품 저장공간과 작품 전시공간을 놓고, 둘 사이의 교집합이 될만한 공간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미술관이 들어설 주변환경의 정체성을 잘 담고있는 하나의 공간 덩어리를 만들고, 똑같은 공간을 하나더 만들어 서로 마주보게 배치합니다. 그리고 그 두 공간 사이에 끼인 공간을 교집합으로서의 공간으로 만들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채 묵혀져가는 대다수의 소장품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을 만들어 보는겁니다. 파트너의 접근법이 너무 단순해서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설은 이정도로 하고, 다시 매거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국 서울 건축 리뷰라는 매거진도 제가 머리싸메고 고민해서 만들었음에도, 그 지속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는 세라와 하라가 더 명쾌한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말고는 그다지 관심있는 사람이 없어보이니까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당연히 이런 매거진은 있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없기 때문에 할만하다는거죠. 


한국에도 건축 관련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는 수두룩 빽빽한걸로 알고있습니다. AA스쿨, 델프트 공대, 하버드 예일 MIT 등등 이름에 후광이 있는 학교들을 졸업한건 물론이고 쟁쟁한 글로벌 건축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울의 건축물에 대해서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의 건축물 말이죠. 대다수의, 평범한, 거리에서 숱하게 마주치는 건물들. 즉, 쓴다고 하면 종묘나 동대문 DDP나 창덕궁처럼 뭔가 정치적, 역사적으로 대서 특필할만한 특별한 건축물에 대해서 쓰는게 대부분입니다. 


사실상 이런 얘기는 다 쓸모없는 사설에 불과합니다. 그냥 해보면 해보는거고, 써보면 써보는거죠.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쓸 필요는 없을겁니다. 정독 도서관. 세번째 주제는 정독 도서관으로 정했습니다.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구 공간사옥이자 현 아리리오 갤러리 건물로 하려다 일단은 좀더 친숙한 정독 도서관을 먼저 다루기로 했습니다. 공간 사옥이야 여태껏 수도없이 많이 다뤄져 왔을게 분명하니까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못다룰것도 없고, 그래서 더 다뤄야 한다는 얘기도 할 수 있겠지만요. 


정독 도서관은 북촌 거리를 가로질러 언덕을 올라서 건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정원 공간이 특히 멋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여유있는 공간을 찾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책을 보기위해 찾는 사람만큼 데이트나 산책을 위해 찾는 사람도 많은 곳이죠. 하라가 찍어둔 사진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3편은 정독도서관입니다.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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