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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5. 2023

세계 최고의 열린 미술관 창고 디자인안 발표를 보고

서리풀 보이는 미술관(수장고) 설계공모 심사 공개 프레젠테이션


11월 30일에 서울시에 들어설 미술관 설계공모 프레젠테이션이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된 발표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여럿 참여한 공모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유튜브를 끊은지 약 40일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한번씩 습관처럼 유튜브 앱을 열어서 어떤 영상들이 올라오는지 휙 훑어본뒤 다시 화면을 꺼버리곤 했습니다. 30일 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단에 배치된 추천 영상들을 쭉 훑어보는데 초록색 바탕에 보이는 미술관이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제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정확히 그와 같은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프로 리뷰어가 아닌만큼 마음편히 사설을 좀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정신은 좀 내려놓고, 그냥 느지막이 건축을 배우는 느슨한 대학원생으로서 얘기를 풀어나가보려는 생각입니다. 일단은 그 영상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날은 완전히, 혹은 완벽히, 두말할 여지없이 프로젝트에 넉다운 당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새지도 않던 밤을 몇날 몇일이나 새우면서도 프로젝트가 좀처럼 진전이 되지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끝까지 해보자고 덤비다가 30일 저녁에는 머릿속 퓨즈란 퓨즈는 모조리 타버려서 두손두발 다 들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안되겠다. 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오를 수 없는 나무도 있는법이다, 하고 단념하면서요. 


집에서 시끄럽기 그지없는 멕시코 한량들의 노상파티에 괴로워하면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상에 앉아서, 이마에 손을 얹어서 열기를 간신히 식히면서, 고개를 뒤로 젖힌채 완전히 조각난 뇌세포와 신경조직과 육체의 마디마디에 전해지는 얼얼함에 절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를 열었더니 보이는 미술관 경쟁피티라니, 깜짤 놀랄만도 했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건축 스튜디오인 MVRDV, Herzog de Meuron의 리더가 직접 진행하는 발표들이었습니다. 사실 두 스튜디오의 수장인 위니 마스와 자크는 이미 한국에서 건물을 세운 전력이 있었고, 또 보이는 수장고라는 최근 미술관 흐름을 반영한 대표적인 건물을 이미 해외에 디자인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수업에도 두 스튜디오의 건물이 대표적인 참고 사례로 나왔으니 알만한 사람은 다들 아는 미술관의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너무 명성 명성만 떠들어댄 느낌입니다. 프로젝트의 본질로 돌아가서 보이는 수장고라는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마 그에 대한 글 역시 제 브런치에 두번정도 발행을 한듯합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세계의 많고많은 미술관에 미술품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예술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계를 살펴보면 많은 미술관들이 소장한 컬렉션 가운데 약 5퍼센트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90퍼센트에 육박하는 작품들은 창고에 쳐박혀 있다는 뜻입니다. 미술관 수장고를 열어젖히자는 논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건축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전시장과 완전히 분리된 수장고의 공간적인 구성 역시 건축에 의해 디자인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장고의 고립이 건축에 의해 가능했다면, 그 개방역시 건축에 의해 가능한게 당연할겁니다. 어느정도 공식적인 배경을 설명했으니 다시 느슨한 건축대학원생 개인적 감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날의 저는 마치 수학문제를 끙끙거리면서 풀다가 풀다가 메달리다 목을 메다가 결국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동댕이쳐진 낙제자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생중계되는 건축가들의 발표는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눈부신 답안지와 같았습니다. 


건축 디자인은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문제와 같습니다. 어느 부분은 답이 명확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른 답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문제 자체를 다르게 해석해버릴 여지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여섯팀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공유하는 지점이 있는가하면, 완전히 갈라지는 차이점도 공존합니다. 어떤 안은 극단적으로 복잡다단하지만 또 어떤안은 지나치다 싶고 건성이다 싶을만큼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게 가만히 뜯어보다보면 복잡하다고 잘한것도 아니고, 건성이라고 못한것만도 아닙니다.  


보고싶어서 죽고 못살던 롱디 연인의 얼굴을 갑자기 마주한것처럼, 이번 프레젠테이션 생중계는 반가웠고, 재미있었고, 보물로 가득했습니다. 이 프레젠테이션 리뷰만으로 글을 열댓편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사실 열댓편은 지나치고, 대여섯편은 진심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오늘의 글은 이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쓰고보니 읽을거리 없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분된 상태입니다. 아마추어 건축학도로서, 아마추어 작가로서 당연한것 아닐까요.


이 다음편은 여섯팀 각자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하나씩 언급하는게 좋을지, 혹은 여섯팀이 공통적으로 갖춘 내용과 서로의 차별화 요소로 작용한 요소를 분석하는게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공통점을 먼저 언급하고 차례로 각 팀의 개성을 훑어나가는게 가장 적절한 흐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일주일이 가기전에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이 생중계를 클릭함으로써 제 유튜브 시청중단 캠페인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OvgHFSL_k5w?si=MKD8uM5qkG6n6RCo



https://www.youtube.com/live/tlbGBGff63I?si=36ELFhNH3KHDxx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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