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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27. 2023

그럼 라면 삶는것도 건축이란 말이냐

오늘은 정말로 건축에 대해서 한글자도 쓰고싶지 않지만, 지난주에 한편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써야만 한다. 오늘은 정말로 쓰고싶지 않다. 건축은 쓰는게 아니라 그리고 만드는거 아닌가. 도대체 건축에 대해서 써야할 이유가 뭔지 묻고싶다. 뻔히 건축에 대한 글을 쓰는 매거진을 만들고, 그래도 세달가량은 매주 한편씩을 발행해온 사람으로서 할말이 아니란건 확실하다. 알고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아는거지 감성적으로 이견이 생긴건 어쩔 수 없다. 얘기가 나온김에 건축에 있어서 글쓰기의 의미와, 또한 만들고 세우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건축에 대해서 쓴다고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페이퍼 건축가이다. 페이퍼 건축가가 정확히 글을 쓰는 건축가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건물을 실제로 짓지 못하고, 그저 종이위에 가상으로 스케치만 하거나 말로만 디자인하는 건축가를 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어느정도의 부정적 시선이 담겨있는 단어인 셈이다. 방금 쓴 문장처럼 쓸데없이 군더더기가 많은, 혹은 군더더기 뿐인 존재라는 시선이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건축은 건물을 세우는 일일진데 건물을 못세우고 종이위에 건물 그림이나 그리고 글이나 끄적이는 건축가가 무슨 건축가냐?


하고 묻는다면 그래도 그 건축가 역시 건축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건물을 세우는 사람이 모두 건축가인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건물만 올린다고 다 건축가라면 라면을 몇천개 쌓아서 대충 건물처럼 보이게 쌓아올리는 사람도 건축가가 아니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건축가는 건물을 올리는 사람이요 라고 말하는 것은 방금 쓴 라면에 대한 문장처럼 말도 안되는 말이다. 차라리 삶은 라면 면발로 차양막을 만든다고 하는게 더 말이 될 것이다. 꼬들꼬들한 면발로 만들어진 발을 상상해본다. 어쩌다 발 하나가 끊어져 입에 들어가면 그 맛으로 어디 라면인지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삼양라면 신라면 진라면 등. 


그러면 건축가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일까. 글을 안쓰는 건축가도 있다. 건물을 세우지 않는 건축가도 있다. 그럼 뭔가를 하지 않을때 그건 더이상 건축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이 있을까. 이건 아주 중요한 질문처럼 들린다. 그런데 생업을 접고, 이역만리를 날아와 크기만 큰 낯선 도시의 대학원에서 주구장창 건축을 공부했는데도 여기에 대한 답을 쉽사리 내릴 수가 없다. 뭐 대단한 영혼이 깃든 건물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건축가가 아니려나. 그렇다면 숱한 건축 초년생 건축가들은 모두 건축가가 아니라고 해야 맞는것 아닌가. 그렇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럴싸한 답이 떠올랐다. 시스템이나 체계라는 말을 쓰는게 좋을 것 같다. 건축가는 아이디어와 현실속의 물질을 포괄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 제품 디자이너도 그렇다면 제품에 대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뒤에 그걸 프로토타입으로, 또 시제품으로 물리적 형태로 만들어내니까 건축가겠네? 하고 물을 수 있다. 실제로 건축가 중에는 제품 스케일의 디자인을 했던 사람도 있다. 대번에 떠오르는 사람은 없다는게 함정이다. 그러나 분명히 있을 것이다. 건축가의 특징이라면 디자인 대상의 스케일이 광활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핀란드의 거장 알바 알토는 건물의 문 손잡이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그러니까 사람의 삶의 무대가 되는 큰 공간에서 시작해 열고닫는 문의 손잡이처럼 작은 소품단위까지 하나의 시스템 아래 설계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운좋게도 어느정도 말의 구색이 맞아가고 있다. 건축가란, 말이다. 물리적 구현을 염두에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특정한 체계에 따라 다양한 스케일의 사물로 만들어내는 사람, 정도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과정으로서 글쓰기도 대충 건축의 한 꼭지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고, 무슨 아이디어든 어떤 스케일로 구현해내는 건물 세우기 역시 하나의 건축 활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건 특정한 체계일텐데, 이 체계라는게 전혀 없고 개판으로 세워지는 건물이라면 그 주체는 건축가라고 보기 어렵겠다. 하지만 체계는 또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건축적인 체계고 어디를 벗어나면 건축같지않은 체계인가? 


체계가 제대로 세워진 프로젝트는 스스로도 디자인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놀라곤 한다. 학생으로서 나는 고작해야 큰 모형으로 만들어내는게 디자인 아이디어의 구현의 전부였지만, 어쩌다 좋은 아이디어, 좋은 시스템을 고안해낸 경우에는 모형을 만들면서 내 아이디어가 이런 식으로 구현이 된다는게 마치 내가 배우인줄 모르지만 사실은 최절정 미남 미녀 배우인 사람이 눈앞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처음 목도하는 것 마냥 신비롭고 흥분되고 어처구니가 없기까지 하다. 그런식으로, 아마도, 건축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좋은 시스템이라는건 지금의 나로서는 만들어봐야만 알 수 있는 어떤 것, 손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개념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그러니까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맡긴다면, 일단 만들어봐야 좋은지 알수있을것 같아요 라고 이실직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름있는 건축가도 사실상은 비슷한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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