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가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처럼 공사 현장에 나갔을때, 뭔지모르게 마크 현장 소장과 지원팀 닉, 또다른 현장 관리자 데이빗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늘 보던 분위기와는 뭔가 달랐다. 아마도 유선으로 다른 누군가와 논의를 하는것처럼 보였는데, 그 밖에도 이래저래 분위기가 뒤숭숭한 느낌이었다. 결국 오늘 건물 외관 작업을 함께한 친구를 통해 이제 산드라는 나오지 않는다는걸 알게됐다.
산드라는 온라인 마케팅을 하다가 작년 12월에 현장 공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50대는 넘어보이는 나이에 공사 경험이나 전문 지식도 없었지만 봉사자들에게 작업 내용을 설명하고 격려하는 데에는 산드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도 조금씩 눈에 들어왔던 부분이지만, 몸이 날렵한편이 아니라 높은 곳을 이동하며 진행되는 작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허리를 감싸는 벨트로 봐서 어쩌면 통증을 안고서 작업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른손 손가락을 당기는 근육이 왼손만큼 즉각즉각 말을 듣지 않는것도 어려움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드라는 건장한 남성 둘이서 옮기기에도 버거운 시멘트 패널을 운반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나는 다른 봉사자 파트너와 어깨까지 오는 높이에다, 그 두배 길이의 너비로 만들어진 패널을 고작 10미터 정도 옮기는데 여러번 손이 미끄러질뻔 했다. 산드라가 속한 2인조는 그러나 템포가 조금도 쳐지는 기색이 없었다.
산드라와 대화할때 고개는 나를 향하면서도 눈동자는 어딘지 모를 허공을 향하던 그 눈동자가 생각난다. 여기서 산드라의 눈동자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해고가 대단한 비극이고 그 비극에 대한 조의라도 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게 될게 분명하다. 그래도 그 눈빛이 생각나는건 어쩔수 없다. 허공을 보다가도 이따금씩은 내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던 눈 말이다. 벌써 두달이 다되가는 공사현장 작업의 첫걸음을 떼도록 작은것들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익고, 다른 동료들과도 작업을 함께하게 되면서 산드라와 일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산드라는 내가 만난 처음부터 오늘의 해고 전까지도 쭉 비슷한 작업을 담당했다. 먼지가 가장 많이 날리지만 작업 결과는 벽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드라이월 작업이 그중 하나다. 또한 매번 새롭게 찾아온뒤 99퍼센트는 다시 찾지않는 봉사자들에게, 똑같은 드라이월 작업 메뉴얼을 설명하는 반복적인 작업도 그중 하나였다. 하나다는 이제 틀리게됐고, 하나였다고 하는게 맞는 말이 되었다.
한 팀으로 일한 날에는 일과를 마무리하고서 '팀 산드라 수고했어,' 하고 말해주던 모습이 그려진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더이상 한 팀으로 일하지 않게 됐지만, 지난주엔가 혼자서 실내 작업을 하던 산드라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전했었다. 산드라는 동기부여의 대가라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던건지도 모른다. 뭔가 들뜬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던 산드라는 해비타트가 2002년에 발행한 집짓기 메뉴얼북을 PDF로 나에게 보내줬다. 지금 짓고있는 다세대 주택에도 적용되는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공사 현장은 일단 도착해서 안전모를 쓰고 인입하면 자석같은 힘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돈도 받지않고 하는 일이건만 나는 마치 기말과제 모형을 만들듯이 집중해들어가기 시작한다. 오전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마크 소장이 런치타임!!! 하고 소리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점심을 먹고 뚝딱뚝딱 남은 일을 좀 해보려고 폼을 잡으면 어딘지 아쉬운 지점에서, 좀더 할 수 있는데 하는 지점에서 현장 정리를 해야하는 시점이 찾아온다. 모든 공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안전모와 공구주머니를 벗어서 정돈한다.
일렬로 늘어선 네개의 주택중 1번 하우스 차고가 임시 휴게공간이다. 현장을 나오기 전에 또 보자고 인사하던 산드라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 열심히 일해줬다, 항상 고맙다, 또 보자. 지난주의 목소리다. 산드라 그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