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 동료와의 귀갓길 위에서.
제프가 여든 다섯살이라는 사실을 어제 귀갓길에 알았다. 여든 다섯. 그리고 85년에 태어난 1인으로써 마흔에 대해 쓰려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지반 작업을 막 끝낸 콘크리트 바닥에는 벽도 없고 지붕도 없다. 한낮의 캘리포니아 태양이 일하는 내내 작열한다. 키가 190가까이 되보이는 제프는 목이 다 늘어난데다 헤질대로 헤진 흰 반팔티 한장과, 기억나지 않을만큼 빛바래 옅어진 색의 반바지 차림이었다.
제프는 로스앤젤레스에 40년을 살았다고 얘기했다. 나머지 절반의 세월은 미국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다. 지질학자로서 정부나 기업, 학교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나사와의 프로젝트에 제일 자부심을 갖고있는 모양이었다. 지질인지 지각인지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였다. 지구과학을 좀더 성실하게 공부했다면 제프의 설명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땅속을 파들어가는건 건축도 지질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땅을 파고, 지반의 안정성을 점검하고, 단단하고 평평한 바닥면을 인공적으로 만든다. 그런 뒤에는 목재 구조체를 세우기 위해 레이아웃을 그리고, 그려진 선에 따라 압축가공으로 강도가 높아진 각목(씰 플레이트)를 배치한다. 씰 플레이트는 시멘트 바닥에 뭍혀 고정된 앵커를 매개로 단단하게 고정된다. 앵커는 대가리가 땅속에 박힌 볼트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씰 플레이트 각목에 이 앵커들이 관통할 구멍을 뚫어서 고정한다.
이날의 작업은 헤수스가 감독하고, 내가 드릴로 구멍 뚫을 곳을 마킹하고, 제프가 마킹된 곳에 드릴을 돌리는 식이었다. 오전 오후 작업을 뙤양볕 아래 하다보니 어느순간 속에서 시큼한 신물이 올라왔다. 수분 보충을 위해 휴게공간을 찾을때마다 제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었다. 작업할 때는 태양처럼 입꾹닫 작업에 집중하지만 휴식시간을 두어번 같이 보내며 얘기하다보니 귀갓길 동선이 겹친다는걸 알게됐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지하철 역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제프는 20여년간 해비타트 공사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야기가 NGO에 대한 주제로 확대되고, 어떻게 대기업 자본을 사회적 목적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져갔다. 정확히는 내가 품고있는 질문이었다. 제프는 기업은 태생적으로 스스로의 이윤창출이 목적인 만큼 공공의 영역은 정부의 몫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사업에 대한 공화당의 정책과, 민주당의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 1880년대의 미국부터 시작해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공사 현장에 나가면서 마흔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대부분 사라졌다. 오히려 여든 다섯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스물하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마흔은 오히려 마흔 따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에 아주 좋은 나이다. 마흔인가란 제목으로 대단한 통찰같은 것, 혹은 통찰이 되지 못한 사적이고 사소하기 그지없는 궁상 같은것을 담아낼 줄 알았지만 생각대로 되지가 않는다. 아마도 그게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