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한번씩 세상이 나를 몰래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망치질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 졸업 작품에서는 어디 고상한 철학자의 망치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진짜 망치를 잡고 이렇게 나 휘둘러댈줄은 몰랐던 것이다. 망치가 무뎌지고 손잡이 자루가 부서졌을때 드러나는 것들에 정신 팔려있었던 나. 그리고 가능한 균형 잘 잡힌 망치로 정확히 못을 때려박는데 정신 팔려있는 나.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건가?
홈즈의 공사장에 도착하면 망치를 집어든다. 부서진것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여기선 망치를 원래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크게 두가지 용도에 따라 피니쉬 해머와 프레이밍 해머로 나뉜다. 피니쉬 해머는 망치 머리가 평평하고 반든반들한 반면 프레이밍 해머는 작은 사각형 돌기로 덮혀있다. 쇳덩이 자체를 그렇게 가공한 것이다. 그래서 프레이밍 해머는 큰 못을 격정적으로 때려박는 투박한 작업에 적합하고, 피니쉬 해머는 좀더 아기자기한 못을 세심하게 박는데 적합하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전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 프레임을 짤때 쓰고, 후자는 외벽이나 내벽의 마감제 작업을 할때 사용한다.
망치만 두가지는 아니다. 못도 두가지로 나뉜다. 사실 사이즈와 몸체와 표면 가공에 따라서 더 많은 종류가 있지만 프레이밍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두가지다. 하나는 표면이 아연도금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쇠로된 것이다. 아연 도금된 못은 콘크리트 바닥에 놓이는 각목에 사용하는데 바닥면에 닿아 녹이 슬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아연 도금된 못은 이상하게 일반적인 못보다 좀더 강도가 약하다. 망치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쉽게 휘어버린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지면 바로위에 까는 각목은 각목도 마찬가지로 특수 처리가 되는데 목재를 압축해서 강도를 높이는 식이다. - Pressure Treated Sill Plate라고 부른다. 줄여서 씰 플레이트. 보통의 목재보다 더 밀도높고 딴딴한 목재라면 그걸 관통하는 못도 그래야 하겠지만, 정작 사용하는 못은 아연도금되어 물렁해진 못이다. 그래서 씰 플레이트에 못질을 하기전에는 미리 가느다란 드릴로 구멍을 뚫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사전작업을 해두면 못이 들어가는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또 아이러니가 있다.
못질 작업을 하는데 드릴을 들고 기웃거린다는건 초보자 딱지를 머리위로 들고 흔드는 것과 같다. 누가 나를 초보자로 보든 말든 상관없다면 그걸로 그만이겠지만, 신경 안쓰면 그만이라는 것들이 대게 가장 신경을 쓰이게 하는 법이니까. 체면도 체면이다만 시간 소요가 큰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박을 못이 몇갠데 그 못들이 들어갈 자리마다 드릴을 돌린다는건 현장에서 적잖은 시간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결국은 아연도금되어 뿌연 회색빛 못을 씰 플레이트에 그대로 박어넣는다. 못은 휘기도 하고 단번에 들어가기도 한다. 휘었다가 다시 곧게 펴 박어넣는 법도 알게된다.
물론 결국은 마지막에 가서 대가리가 복구 불가능할만큼 휘어버려 뽑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못을 뽑는건 못을 박는것보다 더 힘들다. 힘만으로 뺄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실질적인 이유, 그리고 아마도 한번에 할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실패감이라는 심리적인 이유의 협공일 것이다. 못도 빼내다보면 기술이 생기기 시작하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구멍 뻥 뚫린 실패한 못자국을 볼 수 있게된다. 넘어진 뒤에도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은유적인 과정이라고 여긴다면 그럴싸 할테지만 현장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에 그런 교훈을 새길 여유는 없을 때가 많다.
끝으로 망치 없이 못을 박을 수 있는 법도 있다. 네일건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전기 배터리로 구동하는 것으로 못이 들어갈 곳에 총구를 대고 살짝 압력을 가해주면 압력이 충전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즉시 방아쇠를 당기면 못이 총소리와 함께 발사되어 박힌다. 네일 건에 사용하는 못 역시 아연 도금된 것과 일반 못이 구분된다. 전자는 못 끝이 노란색, 후자는 파란색이다. 경력 5년이 넘어가는 숙련공 모세는 네일건으로 악보를 연주하듯이 못을 박아댄다. 드럼을 친다고 해야할까. 퉁 퉁 퉁. 퉁 퉁. 퉁 투 둥. 그 리듬이 내 손에서 흘러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