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건축 혹은 디자인의 정의
지난주에는 제프라는 친구가 네일건으로 쏜 못이 자신의 왼손을 관통하는 사고가 있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는 나게 되어있다. 사고란 말그대로 사고이기 때문이다. 의지나 의도를 벗어나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왼손 엄지와 검지손가락 손톱에 자리잡은 검붉은 멍도 마찬가지다. 망치를 다루는게 서툴다보니 못을 잡은 손가락을 때리고 말았던 것이다. 공사장에서는 안전이 제일이다. 마크 소장은 휴식 공간의 흰 칠판에 모두가 볼 수 있게 - 아니 볼 수밖에 없게 - "Safety. Safety. Safety." 라고, 줄바꿈을 할때마다 점차 글자 크기를 키워가면서, 세번을 반복해 적어두었다.
건설 현장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주의를 요하는 작업 중 하나는 톱질이다. 못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톱이 존재한다. 대부분이 모두 배터리로 구동하는 파워툴이다. 원형톱(Circular Saw)이 가장 일반적인 톱으로서 그냥 톱이라고 말하면 그건 원형톱을 일컫는 것이다. 목재 패널이든, 각목이든, 대부분의 재료를 길게 자를때 사용하는게 원형톱이다. 왕복톱(Reciprocating Saw)은 일직선의 톱날로 이음새를 끊어낼 때 주로 사용한다. 실톱(Jig saw)은 톱날이다른 톱들에 비해 (실이라고 할만큼) 매우 가는편이다. 끝으로 절단톱(chop saw)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목재를 썰어내듯 자르는 톱으로 넷 중 덩치가 가장 크다. 거대한 톱날은 완전한 직선으로 절단해낸다. 절단톱은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목적 지향적인 마크 소장의 걸음걸이도 비슷하다. 거기엔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봉사자들이 톱을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다. 밭을 가는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다가도 안전교육을 받고 톱을 집어드는 사람이 보이면 마크는 걸음을 멈춘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멀찍이 진행되는 톱질을 바라본다. 물가에 내어놓은 갓난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처럼 예의주시한다. 그리고 봉사자의 손가락이 톱날의 안전라인을 스치기만 해도 곧바로 개입한다. "헤이!" 그리고 이미 교육받은 안전관련 유의 사항들을 한번 더 따발총처럼 쏘아준다.
그 위험성에 준하여, 위에서 나열한 네가지의 대표적인 톱들은 대부분 장비 자체에도 안전장치가 철저히 구비되어 있다. 안전 장치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손잡이 부분을 살펴보면 톱의 구동 버튼이 이중으로 설계되어 있다. 방아쇠만 당겨서는 톱이 작동하지 않는다. (버튼이 끝까지 눌러지지도 않는다.) 검지 손가락으로 방아쇠식 버튼을 끝까지 누르려면 엄지손가락 부근에 마련된 스위치형 버튼을 먼저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이 스위치를 엄지 손가락으로 누른채로 방아쇠형 버튼을 누르고 나면, 그때부터 엄지손가락을 때어도 톱은 작동하는 식이다.
트리거도 트리거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사고를 일으는 것은 트리거로 작동하는 톱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톱날에는 이중으로 안전장치가 되어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형톱을 살펴보자. 동그란 톱날이 평소에는 플라스틱 덮게로 덮혀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쓰는 절단톱도 마찬가지다. 원형톱의 두배정도 되는 크기의 톱날이 평소에는 역시 안전커버에 덮혀있다. 거드는 손으로 커버를 젖혀 올려야 톱날이 드러난다. 절단톱은 톱날을 아래로 눌러 내리면 자동으로 커버가 벗겨지는 식으로 작동한다. 두 경우 모두 사용이 끝나고 나면 커버가 자동으로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톱날을 감춘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절단톱과 달리 원형톱과 실톱은 정확한 작업을 위해 섬세한 컨트롤을 요구한다. 그래서 톱날 주변에 기다란 직사각형의 철제패널이 마련되어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 이 패널의 정면부에는 톱을 직선으로 밀었을때 절단되는 기준선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후면부나 측면부, 혹은 패널 전체를 절단하려는 재료위에 기대면 작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톱날을 감싸는 직사각형 패널은 기본적으로 지지대 역할을 하지만 톱날 주변으로 손가락이 얼쩡거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한다. 특히 실톱의 경우 톱날을 감추는 안전커버가 없고, 버튼 역시 이중으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직사각 패널이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형 톱날을 사용하는 절단톱과 원형톱에 비해 직선형 톱날을 사용하는 실톱에 안전장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걸 알 수 있다. 나아가 왕복톱은 안정장치가 아예 없다고 봐도 좋다. 손잡이에 이중버튼도 없고, 톱날 주변에 안전커버도, 지지대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톱날과 손잡이 사이의 거리가 30센치 가량으로, 네가지 톱 중 가장 멀다는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다른 톱들과 달리 왕복톱은 자르려는 대상을, 거드는쪽 손으로 잡고있을 필요가 없다. 주로 두 손으로 톱 몸체를 잡고 손과 멀리 떨어진 대상을 잘라내는 용도로 사용한다. 즉, 정확한 컨트롤보다는 단순 절단을 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목재 기둥이나 못이 비뚤어져서 제거해야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제거가 목적이기 때문에 기둥이나 못이 좀 훼손되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에 반해 절단톱, 원형톱, 실톱은 정확한 절단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거드는 손이 절단하려는 재료를 잡고 있어야 할 때가 많다. 따라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못을 치려다가 못을 잡은 내 손가락을 내리친 망치처럼 말이다. 잘못된 망치질이 남기는건 손톱의 피멍이지만 잘못된 톱질이 남기는건 공백이다. 말하자면 손가락의 일부가 절단되어 사라진 그런 잔혹한 풍경 같은 것. 그런 공백을 불완전하게 채우는 붉은빛 액체 같은 것. 존재하던 뭔가가 사라지는건 왠만해선 아름답기보다 두려운 사건일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톱 사용법은 사용요령인 동시에 안전 유의사항에 가깝다. 사용한다는건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어떤 도구들은 그 힘을 의도한대로 정확히 통제하기가 어렵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그리고 건축만큼 위험한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는 분야도 없다. 손에 잡히는 도구들 뿐만 아니라 굴삭기 등의 중장비, 콘크리트나 암석 덩어리같은 재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흉기가 될수도 있는 것들을 유용한 도구로 만들어내는 일을 건축이라고 - 혹은 디자인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