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진맥진 들보 작업의 익사이팅
지난주 첫번째 들보를 올렸다. 바닥을 다지고 벽을 튼튼히 세우는데 집중해온 끝에 접어든 단계다. 자칫하면 떨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무거운 물체를 본격적으로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벽체 작업이 견고하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최초 서너개의 들보가 올라갈 자리의 길이를 직접 측정하고, 업체에서 배달해준 들보를 길이에 맞게 자르고, 자른 들보를 동료와 함께 운반하는 것으로 지난주 작업을 마무리 했었다. 6미터로 아주 길다, 적어도 100kg은 될정도로 무겁다, 그러나 뭔지모를 흥분감도 느껴진다.
아마 지상의 공간을 넘어서 공중에 떠있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말하면 이런저런 뼈대로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만큼 공중에 떠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확히 이 지점이 직접 내 손으로 건물을 올려보면서 마주하게 되는 차이다. 내가 만들어보니 만들어보기 전엔 지극히 당연하던 것들이 마술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2층의 공간은 그야말로 마법이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던 텅빈 땅 위에 이런저런 나무 각목들을 세우고 고정하는 시간을 통해 일상적으로 공중에 떠있는 또다른 공간이 만들어지다니.
구조 공학자들이 가능한 보든 만일의 상황을 고려해 정밀하게 계산한 구조체임에도 여전히 불안감이 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들보가 어쩌다가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고작 2층에 이렇게 불안해 한다는게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였다. 뻔히 눈앞에 10층, 아니 10여층, 혹은 100층에 달하는 건물이 즐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 속에서 고작 2층짜리 반듯한 나무집은 대수롭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세계와 창조자로서 만드는 세계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한 셈이다.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반면 작은것 하나하나 놀랍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들은 창조자가 되는 시점에 찾아온다. 새삼 다시한번 그 시점을 음미하게 되는건 지난주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동료와 나눴던 대화 때문이다.
자, 지금까지 여러 작업을 했고 이제 들보를 올리기 시작했어. 느낌이 어때. 나는 사실 기다란 들보 그것들을 재고 자르고 옮기느라 기진맥진해서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몇초간 뜸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익사이팅이라는 진부한 대답을 할 심산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런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그 순간에 나는 그게 내 진심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지쳤는데 익사이팅은 무슨.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긴 뭤하니 어찌저찌 무의식중에 지어낸 대답이겠거니.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니 그 순간 속에는 불처럼 선명한 2퍼센트 가량의 흥분이 기진맥진한 사막 속에서도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구닥다리식 드라마같은 어조의 표현으로 마무리 짓는 글 속에도 뭍혀있는 2퍼센트의 Exciting. 내일은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