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에 잡은 약속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74


인생에서 처음 알게 된 날이 있는데 바로 부부의 날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쉬면서도 쉰다는 사실을 주변에 잘 알리지도 않았고, 멀리 잘 나가고 있지도 않아서 정말 오랜만에 만남이었는데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 없이 넘겨보던 SNS에서 부부의 날이라는 게시물을 보았다.

부부의 날?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날인데.

문제는 내가 부부라는 호칭으로 불린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부부의 날이라는 점이다. 이미 몇 주전부터 이 날로 약속을 잡아두었고, 난 이미 지하철이고, 친구들은 오늘 칼퇴를 하겠다고 어제 미리 야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을 가는 중에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혼자 저녁 먹으러 나오는 게 뭔가 좀 그래서 집에는 닭갈비와 새 밥을 안쳐두고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약간 아찔하다.

무엇보다도 분명 남편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알리 없을 거라 안심하며 가던 길을 쭉 이어 갔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오늘 부부의 날 이래.‘ 라며 이야기했다.

다들 ‘오? 그런 날이 있었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밥을 먹는데 퇴근한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부부의 날 이래.’


하하하… 내가 남편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부부의 날을 알고 있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이미 약속을 왔는데 어쩐담..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문구와 함께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으라는 말을 남겼다. 들어갈 때 맛있는 걸 사가겠다는 말과 함께.

근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부부의 날인데, 혼자네.‘

‘부부의 날인데, 부부가 따로 있네.‘

평소에 장난을 잘 치는 편이라 장난인 건 알지만 미안함과 불편함이 더해져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알면 말 좀 해주지. 약속을 다른 날로 잡았을 텐데.‘

슬슬 짜증 나는 티를 냈더니 장난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집에 들어갈 때까지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같은 방향인 친구 한 명과 같은 지하철을 탔다. 나란히 앉아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근데, 부부의 날이라는 게 원래 있었어?”

“몰라,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그럼 그냥 빼빼로데이처럼 마케팅 같은 건가?”

대화와 동시에 검색창에 부부의 날을 검색한 친구가 놀라며 화면을 보여주는데, 부부의 날은 마케팅 같은 것이 아닌 법정기념일이었다.


* 부부의 날: 건전한 가족 문화의 정착과 가족해체 예방을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우리는 놀라서 ‘오늘 약속 잡으면 안 되는 날이었네.‘ 하며 웃었다.

앞으로 부부의 날을 잊을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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