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을 부딪치며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75


직장인 시절에 기억나는 소소한 행복이라면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집 앞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마신 적도 있고, 소품으로 맥주캔이 필요해서 현장에서 급히 들이킨 적도 있고, 늦은 야근 후에 대중교통이 끊기기 직전이라 어디 자리를 잡고 먹을 수는 없으니 맥주에 빨대를 꽂아 친구와 퇴근하며 한 잔 한 적도 있다. 간혹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면 숙소 안에서 혼자 맥주캔을 따는 것조차 행복했다.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었지만 잘 마시는 쪽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술 마신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술을 좋아하는 건 확실한 듯하다.

어쩌면 10여 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소소한 행복 덕분이 아니었을까?

나와 같이 사는 분, 둘 다 직장인이던 시절에는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회사 근처로 가서 기다렸다가 한 잔 하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유독 먹고 싶은 음식이 있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제 나는 직장인으로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같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직장인의 소소한 행복의 시간에 함께할 수는 있다.

오늘은 같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직장인이 퇴근과 동시에 밖에서 저녁을 먹는 게 어떠냐는 연락이 왔다.

비도 오고, 씻지도 않은 터라 살짝 귀찮기도 했지만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근길에 술이 먹고 싶은 날이면, 그날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일한 날임을 알기에.

급하게 씻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도착시간에 맞춰 동네 호프집 앞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자마자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호프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에게 지금 안주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저 가장 인기 있어 보이는 안주세트를 시킨 뒤 생맥주 한 잔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같이 사는 분과 소소한 행복의 차이라면 난 맥주를 들이켜는 것이었고, 이 분은 소주를 크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서로의 소소한 행복을 부딪치며,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며, 우리는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서로가 사회적으로 속해있는 환경은 다르지만, 소소한 행복을 함께 하다 보면 우리는 꽤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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