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76


몇 달전, 아니 일년 전 부터 여행을 가기로 정해두었던 날이다.

다만, 유동적인 업무 특성 상 이때 뭐가 어떻게 생길지는 모르기에 한 달 전까지도 별다른 예약은 해둘 수 없었다. 역시나 같이 사는 분에게 중요한 일들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여행예정일 1주일 전까지도 아직 호텔 등을 예약하지 못 할것 같은 결론이 났다.

너무 바쁜시기이면 이날 말고 나중에 가도 되니 여행은 없던 일로 하자고도 이야기 했지만, 오히려 바쁜 분이 자신은 꼭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일 때문에 여행 못가는거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며.


그렇다, 우리는 몇 년간 모든 여행에 일이 함께했다.

둘다 특정 업무를 하다보니 바쁜시기에는 시간, 장소 상관없이 연락이 오곤 했다. 매년 있는 여름휴가에도 그랬고, 신혼여행에도 그랬고, 이번 여행 역시 그랬다.

타 지역 출장이 잦은 덕에 가볍고 빠르게 짐 싸는 법에는 자신있지만, 가볍던 짐 사이에 노트북 하나 추가되면 한순간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 한 명(=나)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이 맞는건가…)

예약과 동선, 식당 등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일을 안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게 이런 점에서 다행이었다.

사실 이전에는 여행지로 가는 중에 예약을 하거나 알아본 적도 있는데, 이번에는 이틀 전에 예약을 마쳤으니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지로 향했다.

사실 출발하기 전 날 늦은 저녁까지 같이 사는 분은 일 연락을 받고 있었고, 기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눈이라도 부치면 얼마 뒤에 또 진동이 오는 핸드폰.

물론 이제는 둘 다 도가 터서 바로바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일의 중요도에 따라 ‘아, 일단 이거 먹고 이따가 전화하면 돼.’, ‘음, 잠시만 이것만 하나 답장할게.’ 등의 유연함이 생겼다.

그렇게 여행지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많은 것을 했지만 분명 같이 간 분은 여행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전에 저렇게 심했나?‘, ‘역시 바쁠 때 여행은 안되는 거였어.‘, ’힘들텐데 어쩌지. 그냥 숙소가서 쉴까.‘ 등의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결국 숙소 체크인 시간에 맞춰 한시간 정도 난 휴식을, 같이 간 분은 일을 했다.


그래도 여행와서 좋다고 한다.

여전히 주말 저녁임에도 간간히 연락이 오긴 했지만,

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는 없지만,

이런 소소한 여행은 계속 하고 싶다고 한다.

햇살 아래에서 바람을 거닐며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는 그런 여행말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바쁜 와중에 즐기는 한줄기 햇살같은 소소한 여행도 좋지만

부디 우리의 다음 여행에는 둘 다 여유로웠으면, 온전히 즐길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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