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초밥은 맛있었다.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83


고기러버와 사는 일은 꽤 노력이 필요하다.

매 끼니마다 고기가 들어간 국이나 요리 등을 준비하는 정성과 다양한 고기를 활용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가도 생선보다는 고기를 많이 드시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 이상이다.

음식 메뉴에 대해 큰 욕심이 없어서 초반에는 고기러버에게 메뉴를 맞춰주었다.

불고기, 돼지갈비, 삼겹살, 수육, 제육볶음 등 매번 다른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나에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요리의 ‘ㅇ’도 가까이하지 않던 나였다.)

문제는 고기에 너무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고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더부룩 한 날이 있을 정도다.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오늘 회사에서 스펙터클한 일이 많았다거나, 힘겨워 보이거나 하면 어김없이 고기메뉴를 준비하게 된다.

고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리는 사람이기에.


우리 부모님은 본가에 가면 늘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시는데, 그때마다 난 ‘고기‘라고 답해왔다. 초반에는 그저 ‘고기’, ‘응. 고기를 제일 좋아하지.‘ 하는 대답이었는데, 이제는 ‘아, 고기 때문에 미치겠어.‘, ‘나 맨날 고기 먹어.‘ 등으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웃으시면서 ‘고기 잘 먹으면 좋지.‘라고 하시기도, ‘고기랑 야채랑 잘 섞어 먹도록 해.‘라고 하시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둘이 같이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했다. 저녁 먹던 중에 하는 통화였는데, ‘저녁은 뭐 먹는데?‘라는 부모님의 물음에 나는 또 장난반 진담반, ‘돼지갈비, 미치겠어 진짜. 내가 고기가 될 거 같아 이젠.’이라고 답했다. 스피커 건너에서는 웃음소리와 함께 ‘고기만 자꾸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하는 걱정도 함께 넘어왔다. 대신 야채도 고기만큼 잘 먹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고기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다음 날 같이 사는 분이 퇴근 후 연락이 왔다.


“오늘 초밥 먹으러 갈까?”


나는 고기보다 회를 좋아한다. 이제 장난반 진담반으로 고기 때문에 미치겠다고 장난치는 나에게 너무 미안했던 모양이다. 마침 저녁 준비하기 전이라 좋다는 답변과 함께 주변 초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지하철로 2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에 새로 생긴 초밥 집이 있었고 거길로 가자는 메시지와 함께 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미 퇴근길이었기에 도착하면 혹시 웨이팅이 있을지 모르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도 남겨두고 나갈 채비를 했다.


“##로 가? 아니면 **는 어때?”

“##로 가자!”

“응, 9번 출구지?”

“아니, 거기 1번 출구 바로 앞이던데!”

“나 도착했어. 웨이팅은 없네. 다시 지하철역으로 갈까? “

“아니, 먼저 들어가서 먹고 있어. 나 지하철 타서 가고 있어.”


이미 도착해서 들어가 있다는 말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식당을 향해 갔다. 당당하게 식당 문을 열고 몇 분이냐고 묻는 사장님의 질문에 ‘저 일행 있어요!‘라고 말하고 한 발짝 더 들어가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무리 봐도 같이 사는 사람,, 아니 그 비슷한 사람도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미 식당은 꽉 차있는데, 분명 여기 앉아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없었다.


메시지가 울렸다. “언제 와? 나 계속 앉아있어서 민망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가게 안인데? 어디 앉아있는데?”


근데 내 눈앞에는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너 어디야!!!!”


그렇게 민망함을 가득 안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알고 보니 전혀 다른 곳에 들어가서 앉아있었다. 게다가 장소는 아예 건너편 출구 쪽이라 또다시 지하철역을 가로질러 부랴부랴 걸어가야 했다.

앉아있다는 가게로 들어서니 그제야 홀로 외로이 앉아있는, 혼자 아무것도 먹고 있지 않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난 오랜만에 먹는 초밥을 가고 싶던 초밥집이 아닌 다른 초밥집에서 먹게 되었다.

첫 초밥집에서 전화를 끊고 반대편으로 걸어가던 중에만 해도 화, 그리고 짜증이 밀려올 것 같았다. ‘아니, 난 여기가 가고 싶은데, 진짜 너무하네.‘

근데 두 번째 초밥집 가게 문을 열고, 혼자 처량하게 앉아있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눈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망한 거 싫어하는 사람이 꽤 긴 시간 혼자 앉아있었으니 얼마나 민망했을지. 상상만으로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민망한 이 웃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히려 여기 온 게 더 좋았던 거 같아. 초밥이 다 맛있었어.”

“그렇지?”

“응, 근데 앞으로 메시지 좀 똑바로 읽어줄래?”

“미안해.”


아무튼 초밥이 맛있어서 참 다행이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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