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Day 4
프로이직러는 내 별명 중 하나다.
별명답게 사회활동을 하며 제법 많은 이동을 해왔다.
데이터 분석 부서로 합격해서 그 당시 꽤 많은 연봉을 책정받았던 첫 회사는 서울이라는 이유로 1주일 만에 그만뒀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했던 이름 있는 공기업 연구소는 서울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1년을 채우고 그만뒀으며,
그렇게 서울로 입성해 들어간 뮤지컬 제작사는 회사사정이 어려워 지자 1년을 조금 넘기고 그만뒀으며,
다음으로 시작한 프리랜서 조연출 일은 마음이 힘들어져 1년을 하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쉬어가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나라에서 하는 청년인턴으로 들어간 학교직원은 1달여 만에 마침 빈자리에 정식 채용이 되며 멈추게 되었고
그 정식 채용된 자리는 근 6개월 만에 승진이 되자마자 엔터업계로 이직을 했다.
막상 이직한 엔터업계에서는 초반에 고생을 다하고는 안정되어 갈 즈음 심심하다는 이유로 다시 제작사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난 또 그 제작사를 그만두었다.
사실 이전의 회사에서는 2년을 채운 적이 없어서
제작사도 이렇게 오래 다닐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면 매우 짧은 기간이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을 채웠고, 그 채우는 시간이 매우 힘겨웠다.
몸이 안 좋아져서 수술하고 쉬어간다는 핑계이지만 사실은 그만하고 싶던 게 맞는 것 같다.
휴직 후 복직일자가 다가오며 이제는 복직과 퇴사 중 결정할 때가 되었고,
난 결국 퇴사를 결정했지만
어찌 되었는지 묻는 아빠에게 아직 고민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은 늘 내가 계속 다니길 바라왔다.
연구소를 그만두는 건 결사반대셨고
조연출을 그만둘 때도 계속해서 연출이 되길 바라셨다.
그리고
이제는 3년이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어찌 걱정이 안 되시겠나.
서울에서의 삶이 부가적인 돈이 꽤 많이 든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도 말은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걱정은 안 해.
넌 어차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회사원이 아니시다.
어찌 보면 프리랜서라고 해야 하나?
아빠도 젊은 시절 회사생활을 하시다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그만두셨고,
(엄마는 한 곳을 꽤 오래 다니셨지만)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직장이라는 집단에 속해서 안정적으로 지내길 바라시는 듯하다.
그런데 어쩐담, 난 아빠를 유독 닮았다.
아빠가 며칠 전 술 먹고 전화를 했다. “아빠는 네가 계속 다니면 좋겠어.”
미안, 이미 나 하고 싶은 대로 결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