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을 통해 알게 되는 것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15


일상 속 소소한 일들로 글을 쓰고 있는 요즘.

평일에 글을 쓰는 건 꽤 수월한데, 주말에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키보드 위에 손을 얹는 것도 쉽지 않고 머리를 굴리는 것도 쉽지 않다.

평일이나 주말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백수생활인데 주말에는 쉬어야 한다는 직장인 마인드를 아직도 벗어내지 못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저 금전적인 대가를 받는다는 의무감으로 멍하니 지나치던 아침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첫째, 공기가 상쾌하다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코를 통해 들어오는,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가 너무 상쾌하다.

산 앞으로 이사 온 덕도 있을 테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에 대한 홀가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둘째,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직장인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출근길에는 주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앞만 보고 걸었고, 퇴근길에는 피로한 몸을 어서 누이고 싶어 멍하니 두 발을 보며 걸었다.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 새벽부터 운동하러 가는 분, 이미 하산하고 있는 분, 출근 전에 스터디카페로 공부하러 가는 분, 벌써 일하는 중간이라 커피 한잔으로 휴식을 취하는 분도 있다.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아침을 그저 눈 뜨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으로 여겼던 내가 요 며칠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다.

옆집 할머님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한겨울에도 현관문은 꼭 열어두셨다. 늦어도 아침 9-10시경이면 현관문이 열리는데 간혹 내가 그 현관문 보다 먼저 집을 나설 때면 혼자만의 뿌듯함을 느낀다. 옆집 현관문과 나만 아는 부지런함 내기를 하고 있다.


셋째, 커피의 맛을 알게 되는 중이다.

오히려 자유의 몸이 되니까 커피를 더 적게 마신다. 하루 1잔, 많으면 2잔 정도인데, 직장인의 몸일 때는 하루에 3-4잔은 기본 그 이상일 때도 많았다.

출근을 하면 의무감처럼 커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한잔 마셔야 뇌가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내 몸의 스위치 역할인 듯했다. 점심식사 후엔 나른함에 이어오는 식곤증을 피하기 위해 또 한잔, 일하다가 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기면 또 한잔, 무의식적으로 계속 마시다가 컵이 비면 또 한잔, 퇴근할 땐 집까지 도착할 힘을 얻기 위해 또 한잔, 집에 오면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업무 연락을 받아내려 또 한잔을 마셨다. 간혹 평일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한두 잔 추가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렇게 커피 없으면 못 사는 사람처럼 지내왔는데, 수술 전후로 한동안은 커피를 아예 끊기도 했고, 디카페인 커피를 먹는 비중이 꽤 생겼으며, 이제는 하루에 한두 잔이면 충분한 수준이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다 보니 오히려 커피를 자주 마셨을 때 보다 커피 맛이 더 잘 느껴진다. 어떤 때는 신 원두의 커피가, 또 다른 어떤 때는 고소한 원두의 커피가 끌려서 매번 다르게 주문하기도 하고, 제일 기본만 사던 커피원두를 이제는 맛, 향을 비교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마셨던 건 그저 갈색빛의 물일 뿐, 이제야 커피를 즐기고 있다.


여유로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벌써 세 가지, 아니 그 이상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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