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Day 17
퇴직인사는 퇴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해 왔다.
누군가 퇴사한 사람에게 업무적으로 연락했다가 그제야 퇴사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번거로움을 방지할 수 있고, 퇴사한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누구로 변경되었는지 알려주는 목적을 넣을 수도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그동안 업무 중에 감사했던 마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수단이기에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직종에서 몇 년간 근무하며 퇴직인사 메일을 받아 본 적은 단 2번뿐이다.
내가 일하던 직종은 한 해, 몇 개월 사이에도 많은 사람이 그만두고 바뀐다. 매 해 연락할 때마다 새로운 담당자로 바뀌어 있던 적도 꽤 잦은 일이었는데 그에 반해 퇴직인사는 거의 없던 셈이다.
퇴직인사라는 것이 일하는 동안 감사했거나 기억 남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니 어쩌면 나에게 퇴직인사를 보내고 싶던 사람이 없던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퇴사 후에도 메신저로 가끔 연락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주변 환경 때문에 나 역시도 퇴직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휴직 후에 퇴사하는 거라서 더 애매한 것도 있었다. 휴직하는 것을 알릴 때 딱히 사유를 공유한 것도 아니었고, 휴직 후에 돌아오겠다고 인사한 분도 있으니 이게 내가 지금 퇴직 인사 메일을 보내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게 맞는지 말이다.
며칠 고민 끝에 퇴사 당일이 다가왔고, 나도 대세에 따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회사에 남아있는 다른 분이 뭔가 그런 인사를 나누는 걸 꼴사납게 볼 거라는 생각도 스쳤고, 실제로 이전에 다른 회사 분의 퇴직인사를 받고 뒷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이번 직장은 조용히 마무리하는 듯했으나...
다음 날까지 퇴직인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퇴사한 마당에 내가 회사 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나 라는 생각과 몇 년간 일하면서 감사했던 분들에게 아무 연락 없이 훅 떠나는 건 내가 너무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신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던 회사 메일을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퇴직인사 메일을 보낼 분들은 많지 않았다.
담당자로써 꾸준히 연락했던 분이나 유독 감사했던 분, 딱 생각나는 분에게 보내기로 정리하고 초안을 적었다.
퇴직 인사 메일은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 이번 달 부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점
- 그동안 덕분에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인사
-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다는 혹시 모를 미래
- 앞으로의 건강과 행복을 응원하는 문구
크게 위 4가지의 내용을 짧게 적어두고 받는 이에 따라 약간의 문구를 변형했다.
메일을 보내면서 이렇게 고민되고 손 떨린 적이 있었을까. 오랜만에 보내는 퇴직인사인 데다 다들 정이 많이 들었던 분들이라 뭉클하게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퇴직인사 메일을 받은 몇 안 되는 분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메일 확인 후 전화로 인사를 건네는 분,
선물과 함께 메신저로 인사를 건네는 분,
메일 회신을 통해 인사를 건네는 분,
몇 주 후에 연락을 주신 분,
아무 연락 없는 분까지.
이렇게 퇴직인사에 대해 적다 보니 첫 회사의 퇴직인사 메일에 대한 어느 한 박사님의 회신 메일이 기억에 남는다. 첫 퇴직인사이기도 했고 그 당시 읽고 눈물이 맺힌지라 아직도 메일함에 중요메일로 저장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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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항상 어렵고 힘든 일을 내 일처럼 대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그런 모습은 내가 기쁜 마음으로 연구에 집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공부하고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주 잘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꼭 원하는 꿈 이루길 바랍니다.
OOO와 같이 열정이 있고 스마트한 분은 그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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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0년 만에 메일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참 생각이 많아진다.
참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분이셨는데, 그런 분이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해 주신 것이 유독 그간의 일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그 당시에도 참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예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있고, 시기가 앞당겨 지기보다는 오히려 늦어졌지만
그래도 언젠가 꼭 원하는 꿈을 이뤄서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그 마지막에는 그간의 감사함을 담은 퇴직인사를 드리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