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단골카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19


예정했던 시간에 딱 일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리 늦지 않게 하루를 시작했다.

같이 사는 분이 출장을 가있어서 혼자 늦장부릴 것이 걱정되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부지런히 옷을 꺼내 입고 책 한 권과 패드를 들어 문 밖을 나섰다. 매일 나서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더 살콤한 기분이 든 건 왜일까?


집 바로 앞에는 카페가 딱 1곳 있는데 내외적으로 갈색나무로 인테리어가 되어있어 따뜻한 분위기다. 다만 좁은 공간에 의자가 편하지는 않아서 오래 앉아있기는 조금 힘든 편이라, 가볍게 책을 읽고 싶을 때 찾는 편이다. 처음 방문하는 카페에서는 꼭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편인데,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 메뉴가 맛있으면 나머지도 다 맛있을 걸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소한 원두와 시큼한 원두 둘 다 가리지는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고소한 원두를 선호한다. 이사 오고 처음 집 앞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다른 카페의 시큼한 원두보다도 조금 더 시큼한 편이었고 이후로 이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적은 없다. 대신 이곳은 과일티가 엄청나게 맛있다. 직접 만든 청으로 티를 만드셔서 인지 유기농 티를 마시는 느낌이라 너무 좋다. 때문에 티를 마시면서 여유 있게 독서하기엔 최적의 장소이다.

게다가 오르막길 끝에 위치한 작은 카페라서 이 근처에 사는 분들 외에는 오는 분들이 극히 드물고, 며칠 경험해 본 바로 카페 내부 손님보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더 많다. 카페 사장님 조차도 취미로 운영하고 계신 느낌이라 가끔은 사장님이 너무 부럽다. 오는 손님들 마다 이미 오래된 단골이신 듯 사장님과 친근하게 인사하시는데 나도 언젠가는 사장님과 카페에서 수다 떠는 동네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여유 있는 독서를 원할 때 외에는 5-10분 정도는 걸어 나가면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 중 한 곳을 간다. 카페가 많지는 않아서 2-3곳 정도를 돌아가면서 가더라도 어디든 꽤 자주 가는 느낌이다. 그중에서 제일 자리가 넓은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다. 자리 찾기가 편하고 눈치가 덜 보인다. 다만 점심시간 직후에는 근처 산행을 마친 산악회 분들이 단체로 많이 찾아오시는 편이라 그전에 가야 안정적인 자리확보가 가능하다. 1인석은 없고 2인석 2곳과 나머지는 4인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체 분들은 늘 4인을 넘으신다.

난 주로 10시쯤 2인석 중 한 군데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12시쯤 단체 분들이 많이 오시면 자리를 뜬다. 가끔 유독 글이 잘 써지는 날이나 책을 더 읽고 싶을 때는 더 앉아있기도 하는데 12시쯤 되면 커피 한잔을 다 마시고 화장실이 급해질 쯤이라 산악회 분들께 자리도 양보할 겸, 겸사겸사 일어나는 편을 선택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옹기종기 모여계신 분들께 책상과 의자를 붙여드리면 배려해 준다며 고마워하시는데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이 카페에는 늘 비어있는 4인석 자리가 있다. 꽉 차는 일 아니면 거의 그쪽은 비어있는 편이다. 오늘은 뭔가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글을 쓰고 싶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10분도 안되어 다시 2인석으로 옮겨 앉았다. 알고 보니 그 4인석 바로 위에 번호를 호출하는 스피커가 달려있었다. 내부가 넓은 탓에 번호 호출 소리는 꽤 컸고 그 스피커 바로 아래에 앉은 내 귀는 천둥처럼 울렸다. 사실 첫 번째 천둥이 울렸을 때는 순간 놀랐지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12시쯤 되면 요즘 날도 따스해서 딱 졸음이 몰려오는 시간인데 여기에 있으면 잠이 들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천둥, 이어서 세 번째 천둥이 올리자 바로 생각을 거뒀다. 잠이 깨기 전에 귀가 멎을 것 같았기에… 추가로 이유를 덧붙이자면 혼자 4인석을 차지하는 것은 여러모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아직까지 이 동네에서 내가 단골카페라 부를만한 곳은 없다. 그동안 어디에 살 던 나름의 단골카페들이 존재했는데 여기선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살짝 아쉽다.

대신 여러 카페를 즐기는 시기를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다.

카페를 차릴 형편과 능력은 없지만 카페를 즐길 시간과 마음은 넘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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