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Day 22
퇴사를 고민하면서 진지하게 회사의 장단점을 써보았다.
그중에서도 업무 외적으로 단점으로 느껴지는 면이 꽤 많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적으로 불편한 점은 스스로 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지만 업무 외적인 면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 강요하거나 바꾸기가 어려워서 바꿀 수 없는 단점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여러 회사에서 참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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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커피를 좋아한다. 요즘엔 커피머신이 없는 회사들이 드물어서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길가에 크고 작은 카페들이 많으니 사 먹기도 많이 사 먹었다.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머신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커피머신 청소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다. 청소 용역업체가 있더라도 커피머신까지 청소해 주시는 건 아니니까. 커피머신에 세척등이 뜨면 그 등을 발견한 사람이 청소하고, 그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두 명씩 달려들어서 같이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던 중 한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막내가 무조건 커피머신을 닦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게다가 그 막내분은 커피를 마시지도 않으니 커피머신을 사용할 일은 극히 드물었다. 외부에서 미팅이 와서 커피를 내어주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이 사용하는 일은 없었단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커피머신을 안 닦았다고 닦달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드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 ‘아, 내가 먼저 세척등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부터 시작하여 ‘왜 하필 커피는 제일 많이 마시면서 청소 한번 한 적 없는 저 사람이 세척등을 발견해서 커피도 안 드시는 저분에게 불똥이 튄 걸까.‘ 하는 생각까지. 어떤 때는 세척등이 뜨든 말든 휴가로 자리를 꽤 길게 비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하지 않고 버티고 있던 적도 있었다. 번외로 커피 안 드시는 분에게 커피원두가 다 떨어졌는데 왜 안 채워놨는지, 커피머신에 커피 튄 자국은 왜 안 닦았는지 따지는 분도 보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왜 커피머신을 닦고 커피원두 잔여량을 체크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다. 물론 그게 그 사람의 정해진 업무라면 모르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더욱이 이해할 수 없다. 커피머신을 안 닦았다고 화내거나 커피원두 잔여량을 체크 안 했다고 화를 내는 일들은 어디에도 없었으면 좋겠다. 커피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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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직원 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난 있다.
한 회사에서 들어가자마자 한 여자직원 분이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준다고 말을 걸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하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일단 따라갔더니 도착한 곳은 탕비실이었다. 한편에 놓여있는 쓰레기통, 그리고 분리수거 비닐. 틈틈이 쓰레기통이 차는 대로 비워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았다. 소규모 회사일 수록 직접 청소해야 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다만, 여자직원 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는 했다. ‘오,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 쓰레기 인수인계를 잘 받고 이후의 일은 더 가관이었다. 뻔히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곳에 이물질이 가득 들은 채로 플라스틱컵, 종이컵 등이 버려져있었다. 다른 분리배출 컵에도 묻게 되고, 분리수거 비닐에서 빼서 그 이물질을 버린 후에 쓰레기를 버려야 해서 번거로웠지만 괜찮았다. 범인이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 준, 얼마 전까지 쓰레기 담당이었던 여자직원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심지어 이후에 본인이 할 일이 아닌데 왜 매번 혼자 했냐고 다 같이 하라고 하는 이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자연스레 쓴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히 해당 회사는 얼마 안 되어 규모가 커지며 청소용역회사를 계약했고 이제 쓰레기를 담당하는 직원은 없다. 하지만 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직원 분의 행동이 선명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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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뜬금없이 거래처 실장님께 욕을 먹은 기억도 난다.
업계 특성상 일이 몰아쳐서 바빠지는 시기가 꽤 잦았는데, 이런 날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관련 거래처들도 다들 바쁘게 일해야 했다. 한 곳에서 막히면 아무것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그 시기도 바쁜 시기였다. 다만, 그 당시 대표님은 실무에 크게 신경을 안 쓰셨고 그날 엄청나게 회식이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회사의 많은 분들을 데리고 회식을 갔다. 나름 일에 푹 빠져있기도 애정이 가득하기도 했던 시기라 당장 처리되어야 하는 일들을 멈출 수가 없었고, 결국 회식을 거절하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에 집중했다.
바쁜 시기에는 전화도 유독 많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에게 그러하기에 누군가 회식 중에 거래처 전화를 받았고, 이 바쁜 와중에 우리 회사가 회식을 한다는 소문이 퍼진 게 분명했다. 그렇게 퇴근하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또 다른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고, 그는 첫마디부터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새벽까지 일하느라 피곤과 예민함으로 잔뜩 차 있던 나는 나보다 나이도 직급도 높은 거래처 분에게 맞받아치며 전화를 사이에 두고 새벽 말싸움을 시작했고 결국 새벽 내내 눈물을 흘리며 업무를 처리했다.
그분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본인들은 새벽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함께 일을 끝내야 하는 곳은 고주망태로 회식을 하고 있다니 기분 나쁠만하다. 그래도 첫마디부터 욕을 퍼부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도 회식을 안 가고 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에게. 다만, 다음날 바로 화해하고 오히려 더 친해지게 된 것은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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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배려가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중 특이하게도 남이 놔주는 수저가 참 불편하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누구와 식사를 하게 되던 내가 수저를 세팅하는 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 앉으면 자연스레 수저세팅 먼저 하게 된다. 내가 하는 수저세팅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함이 더 크다.
대체로 제일 어린 사람이 수저세팅을 하거나 갑을 관계에서 을이 수저세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이런 방식이 이미 고착화되어 식당에서 수저 근처에는 손이 안 가는 분들도 꽤 많다. 그거까진 이해한다. 한 번은 상사 분이 막내직원과 둘이 밥을 먹고 와서 수저랑 물 세팅을 둘 다 안 하고 한 개만 한다는 험담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막내직원 분에게 상사랑 먹을 때는 수저랑 물 세팅 둘 다 본인이 하는 거라고 알려주라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다 민망했다. 한 명이 수저를 세팅하면 다른 한 명이 물 세팅을 하는 건 암묵적인 룰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겐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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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주말 사이에 우연히 상사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와서 불쾌한 소리를 들은 경험, 미팅 간 회사 건물 주차장에 주차자리가 없어서 욕먹은 경험, 하루는 메일 말투가 딱딱하다고 또 하루는 메일 말투가 너무 친절하다고 혼난 경험, 대면으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메신저로만 대화하는 동료 등 매우 다양한 경험이 있다. 언젠가 업무 외적으로 마주한 경험들에 대해 모음집을 내고 싶다. 이런 유니크한 경험들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