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새 옷을 사야할 시점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53


옷을 사는 것은 잘 못하는데 전자제품을 사는 것은 잘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현상이다.

계절이 봄도 여름도 아닌 게 애매한 지라 요즘엔 외출 시에 반팔티셔츠에 얇은 겉옷을 걸치는 편인데 오늘은 도무지 입고 나갈 옷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옷을 안 샀나. 그럼 작년엔 도대체 어떻게 입고 다녔지? 이사하면서 다 버린 걸까. 멀쩡한 걸 버렸을 리가 없는데?‘

각종 생각이 들었고, 같이 사는 분 역시 제발 봄 옷 좀 사라며 다그쳤다.

‘나도 옷 사고 싶지. 근데 막상 사려고 하면 못 사겠어. 아까워.’


바지 있고, 티셔츠 있고, 외투 있으면 끝이지 이걸 또 다양하게 구비해 뒀다가 매번 바꿔 입고 상황에 맞춰 바꿔 입고 해야 하는 이 제도는 대체 누가 처음 만든 걸까?

우리는 바로 백화점을 향했다. 산책을 계획했던 것에서 백화점을 가는 것으로 계획이 바뀐 것이다.

도착해서 같이 사는 분은 바로 바지 1개를 구매했다. 맘에 드는 바지를 들고 피팅룸으로 가서 입어보더니 다시 한 치수 작은 바지를 들고 계산대를 향했다.

다시 입어봐야 되는 거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는, 아까 건 좀 컸으니까 이게 맞을 거라면서 쿨하게 구매를 마쳤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마음에 드는 옷들은 있었지만 구매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거 여기 말고 인터넷에서 사면 더 저렴해.’

‘아, 근데 이건 자주 안 입을 거 같은데?‘

‘아니 이런 걸 이 돈 주고 왜 사.‘


내 입에서 나오는 옷을 못 사는 것에 대한 핑계는 참 여러 가지였다. 이 정도 되면 핑계를 미리 공부해 둔 것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누군가는 10분이면 끝나는 옷 구매를 나는 장장 2시간 만에 한 매장에서 2개의 옷을 살 수 있었다. 여름용 니트 하나와, 청바지 하나.

기다리는 사람들 중 본인이 제일 마지막까지 남았다면서 대단하다고 나를 놀리는 같이 사는 분이 정말 고생했을만하다.


그 반면에 전자제품이나 집안물품 관련 된 것들은 꽤 잘 사는 편이다. 이번에 구매한 아일랜드 바와 밥솥도 그렇다. 이전에 사용하던 밥솥이 수명을 다해간 듯 보였고, 자취시절부터 함께한 그 밥솥을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단숨에 결제, 그리고 또 결제.

오히려 큰돈을 쓰는데 망설임이 덜하다. 한번 사면 바꾸기 어려운, 배송도 직접 받아야 하고 여간 귀찮을 법도 하지만 굳이 그걸 또 바로 한다.

구매 후에 일주일도 안 쓴 채 방치되어 있는 믹서기도 그렇고, 도무지 왜 이런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젠 제발 옷 좀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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