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Day 80
퇴사만 하면 아무 때나 놀러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나고, 시간도 많으니 여유 있게 움직이고, 쉬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쉬어보니 여유보다는 오히려 여유에 대한 강박감과 혼란이 생기는 것 같다. 회사 다닐 땐 몰랐던 집안일도 많고, 나만 시간이 있다고 아무 때나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여행을 다녀온 뒤에 텅 비어있을 내 지갑을 걱정해야 한다. 어쩌다가 마음 굳게 먹고 잡은 여행일정에는 갑자기 남편의 회사 일정이 생겨서 여행을 바꾸게 되고, 꾸역꾸역 가더라도 여행 내내 핸드폰에 불이 나는 남편을 보면 미안한 마음만 더 커진다.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지 다짐한 적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우면 얼마 되지 않아 ‘아, 이렇게 시간을 날리면 안 되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타하고, 열심히 움직이자니 나름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글을 써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 번 생각을 떨쳐내려 해도 계속 같은 생각이 든다.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더 좋은 걸로 사, 더 좋은 걸로 먹어.‘
여유롭지만 여유롭지 않은 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한 명이 그만두면서 집안 수입이 줄었고, 괜히 뭔가 사는 것에 나도 모르게 저렴한 걸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그때마다 외벌이 하는 남편은 매일 퇴근하면 지쳐있으면서도 쉬는 거나 갖고 싶은 걸 사는 거에 있어서 부담 가지지 말라고 늘 토닥여 준다. 그러고 나면 잠시 또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그래, 쉴 수 있을 때 쉬고.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아침에 눈을 뜨면 운동을 하고, 카페를 간다.
아침마다 카페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집에 있으면 다시 잠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강의도 듣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대본도 봐야 하고, 벌려둔 일이 많아서 백수여도 하루가 부족하다. 아침시간의 카페에는 음료를 테이크아웃 하는 사람은 많지만 테이블 자리는 텅 비어있다. 텅 빈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난 그저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을 뿐이데,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간다.
결국 오늘도 여유로운데 여유롭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