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보다 현실에 금방 적응한다.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66


단 몇 초라도 핸드폰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불안했던 시절이 있다.

화장실을 갈 때도 핸드폰을 들고 갔고,

볼 일을 보는 동안 잠시 가방에 두거나 옆 휴지걸이에 핸드폰을 올려두는 것도 불안했다.

어쩌다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 갈 때면 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복도자리를 예매했고,

핸드폰은 무음, 절대 꺼두지는 않았다.

집에서도 핸드폰에 대한 집착은 변하지 않았다. 집 안에서 어딜 움직이더라도 핸드폰을 꼭 손에 쥐고 다녔다.


직장인 시절, 나는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프리랜서 분들과 많이 접했는데, 그분들의 연락은 정해진 때가 없이 언제든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핸드폰을 멀리 할 수 없었다.

급하게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더욱 그러했다.


그러던 내가 바로 오늘, 핸드폰을 잊었다.

어김없이 아침에 운동을 하고 카페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방에는 오늘 읽을 책과, 아이패드를 챙겼고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 카페를 향해 걸었다.


‘아, 오늘 날씨가 덥네. 이제 진짜 반팔만 입어도 되겠다.’

‘이따가 집에 갈 때 야채 사가야지.‘

‘오, 만두 맛있겠다.‘


카페까지 가는 길은 꽤 길었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가게, 음식, 사람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카페 앞에 도착했고,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엔 집 근처를 다니는 게 전부라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 1개를 넣어 다니고 따로 지갑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 핸드폰을, 그러니까 핸드폰 뒤에 있는 카드까지 집에 두고 몸만 카페로 향해 온 것이다.

카페 앞에서 허둥지둥 바지주머니와 가방을 뒤져가며 핸드폰을 찾았지만 이내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아침부터 30분의 강제 걷기 운동을 하게 된 셈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괜히 지금의 내 모습이 웃겼다.

예전엔 핸드폰 없이는 1분 1초도 안되었고, 핸드폰이 꺼지려고만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 허겁지겁 보조배터리를 꺼내거나 콘센트를 찾곤 했던 내가.

카페까지 걸어오는 시간 동안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니.

생각해 보니 매일 듣던 노래도 안 듣고 그저 하염없이 걸어왔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이렇게 사람은 금방 현실에 적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핸드폰에 미쳐있던 직장인이, 백수가 된 후로 핸드폰은 필수품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루쯤 핸드폰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핸드폰 뒤에 카드만 가지고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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