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Day 68
비가 쏟아지는 날엔 외출을 삼가는 것이 보통이다.
꼭 나가야 하는 일정이나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게는 집에 머물러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우르르 쾅쾅! 하는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며 쏟아지는 비가 점심시간이 지나도 그칠 기미가 안보였다.
잠시 빗소리가 줄어들어, ‘오, 이제 그치나 보다.‘ 싶다가도 금세 물폭탄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핸드폰에는 호우주의보라며 재난안내문자가 울렸고, 집 안은 평소보다 어두컴컴했다.
집순이인 나는 오늘 외출을 하고 싶었다.
특별한 일정도, 약속도 없었다. 그저 내 루틴을 지키고 싶은 것이기도 했고, 카페에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기도 했고,
종량제 봉투를 버리러 나가야 하니 겸사겸사 나갔다 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고민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주섬주섬 책상에서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신발장에서 잠시 크록스를 신을지 레인부츠를 신을지 고민했다. 겨우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집 앞 카페에 갈 거면서 레인부츠가 맞나? 싶다가도 밖에서 세차게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니 크록스로는 성에 안찰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비 오는 날에는 레인부츠지. 이런 날 신으려고 산거잖아.’
양말을 챙겨 신고는 레인부츠에 발을 넣고 문 밖을 나섰다.
한쪽 어깨에는 빗 물에 젖어도 안에 내용물에는 타격이 없을 가죽? 에나멜? 느낌의 가방을 맺고,
반대편 손에는 종량제 봉투를 들었다.
아파트 1층으로 내려오자 세찬 비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천둥 번개도 여전했다. 잠깐의 망설임이 들긴 했다.
아무래도 저 빗속으로 들어가기엔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일단 빗속으로 들어서 쓰레기장까지 걸었다. 조심스레 종량제 봉투를 내려두니, ‘아, 어차피 들어온 거. 좀 더 갈 수 있어.’라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예정대로 집 앞 카페를 향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발은 안 젖었지만 바지는 종아리까지 다 젖었다. 아무리 레인부츠를 신었어도 롱부츠가 아닌 이상 물은 다리로 다 튀었다.
우산은 매일 들고 다니던 우산인데,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잡고 있는 우산대로 비가 새어 들어오는 우산인 줄은 전혀 몰랐다.
분명 우산을 쓰고 있는데 이마에 물이 떨어졌고, 어느새 눈썹을 지나 내 얼굴을 흐르고 있었다.
‘와, 이게 뭐지?’ 싶다가도 그새 새 우산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렇게 쏟아지는 비를 맞아서 다행이다. 새 우산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렇게 쏟아지는 매서운 빗 속을 뚫고 굳이 카페까지 온 이유를 꼽자면
비가 많이 오니 분명 카페에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고,
비 오는 창문을 보며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입에 머금고 싶었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고,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창문 너머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조금이라도 비 오는 날에는 그렇게 출근이 하기 싫더니,
퇴사를 하고 나니 비가 쏟아져도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문득, 어릴 때 아파트 뒷마당에서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뛰어놀았던 때가 떠오른다.
어쩌면 비 오는 날의 매력을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