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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YSTAL KIM Feb 19. 2020

#타인의 일기_박서영

타인의 일기_ 박서영

당신을 만난 후부터 길은 휘어져
오른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당신을 만나요

길 안에는 소용돌이가 있고 소실점도 있지만
뒤섞여진
인생과 죽음과
사랑과 체념이 있지만

서로에게 닿을 듯이 멀어지는 타인들의 거리에서
당신이 사라져버린 후에 나는 전율하는 모든 순간들에게
묵념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고요히 슬픔을 알아갈 때
머리 위엔 뭔가 뭉클한 것들이 내려앉고
내 신발 속에 수수께끼를 푸는
착한 천사들이 다녀가기도 했어요

내가 길 끝의 낭떠러지로 가면
천사들은 나를 업고 달려가 방에 눕혀놓곤 했지요

책상에는 농담 같은 일기와
진담 같은 詩몇 편

언젠가 당신은 눈먼 거미의 호주머니에서
내 유서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 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한

그것은 우리가 물어뜯고 해체한 시간이에요
나에게 온 적이 없는 당신의 시간이에요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문장을 쓰고 있어요





모르는 척 하는건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누구나 하나쯤 이런 기억을 지니고 살지 않을까.
솔직하게 써내려간 시인의 문장들에
화들짝 놀랐다. 몰래 숨겨놨던 이야기가 떠오르는듯 해서.

시가 너무 좋아서 H 에게도 슬몃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너는 이런게 좋아? 그리고 유서를 왜 쓴다니?"

"음. 유서요. 아마도 정답은 아닐테지만, 여기서 유서라고 표현된건 거미가 눈멀 만큼 오래도록 사랑하고 내가 죽으면서 까지도 오래도록 열렬하게 사랑했다 내지는 사랑했었다 라는걸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거라고 생각해요. 절절하게 탄원하듯 당신을 사랑해왔다고. 유서만 쓸 수밖에 없는 그런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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