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그녀가 내뱉는 줄글이란 온종일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 말이야(생략) 그 사람이 글쎄(생략) 알고 보니까 말이야,... 근데 왜 아직 연락이 없는 걸까. 너무 슬퍼.'
다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도, '글쎄 그러니까 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할까?(생략)'
오, 이런 중증이네 할 정도로 온탕 빠져서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며 마음을 표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직접 말하지 못할 것 같다며, 편지글을 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좋은 편지를 좀 써 달라고 했다. 실은 과거에도 한번 쪽지를 전달했는데 별 다른 반응이 없다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써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해서 막연히 잘 모르지만, 어쩐지 너랑 성향이 비슷하다고. 말투며 행동이며 표정이 비슷해서 왜인지 네가 적어주는 것들이면 통할 것만 같다고.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언제 한번 커피를 마실까요 하는, 그런 사람이 사람 좋다는데 이유가 있나요 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 달라고 했다.
매일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나는 요청에 응답했다. 내가 받고 싶을 만한 문장들을 짜내서 쏙쏙 집어넣어 줬다. 그녀는 아주 흡족해했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전부터 그녀는 너무 떨려서 다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라며 강하게 그녀를 다독였다. 몇 시간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있다가 전화할게.....' 핸드폰 창이 밝게 빛나며, 힘없이 비실거리는 말줄임표가 한가득인 연락이 왔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 설마. 얼마 뒤 바로 전화가 왔다.
내가 먼저 질문했다. "나는 결론이 듣고 싶은데, 그래서 받았나요, 연락처?" "응..." "와! 대단하다. 멋져요!" "어. 그런데 내가 편지드리기 전에, 그냥 솔직히 말했어. 시간 조금만 내어 주실 수 있냐 해서, 그냥 친구 하고 싶다고. 친구 정도 하고 싶은데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해 달라고 했어. 부담드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고. 그렇지만 연인이 되고 싶다 이런 거 전혀 아니라고, 그냥 나이도 비슷한데 편하게 같이 차 마시고 하는 동네 친구 하자고." "와, 그랬더니요?" "... 뭐 이런저런 대화 나누고, 연락처 받았어.." "내가 다 설레네, 시무룩하게 연락이 와서 나는 혹시 거절을 받았구나 했어요. 진짜 다행이다." "어. 근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음?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죠?" "김수정이 알려줘야지. 이다음에 어떻게 해야 해? 나 진짜 모르겠어. 으헝헝 수정아 너무 어렵다고."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먼저 누군가를 좋아해 보았다고. 항상 서로 마음이 오가는 걸 확인하고서 연인이 되어 보았지만, 이렇게 아무 접점이 없는 타인을 무작정 좋아해 본 것은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라고. 난생처음이라고. 그래서 너무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며 수많은 질문지를 내게 던질 테지만, 나는 그게 밉거나 성가시지 않을 테다. 분명히 나도 겪어본 일이고, 그게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아니까. 그리고, 그런 소소한 곤란함 까지도 기꺼울 정도로 온통 행복해지길 바란다. 좋은 친구가 될지, 연인이 될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마음이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미래야 알 수 없더라도, 오늘의 이 하루가, 그녀에게 기쁘고 행복한 하루로 기록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