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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YSTAL KIM Mar 30. 2020

소중한 인연들






어제는 새벽까지 온라인 수업 영상 작업을 했다. 열심히 제작했는데, 동영상 저장이 세 시간이 다다르도록 완료되지 않아 기진맥진해졌다. 이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자고 차분하게 다시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스름한 새벽 다섯 시에 잠이 들었고, 아침 9시쯤 눈을 떴다. 다시금 작업을 펼쳐들고, 이유가 뭐였을까 시름하다가 I교수님과 통화도 하며 문제점 분석을 하다 결국, 다시 만들어야지 하고서는 사무실로 향했다. 도저히 집에서는 더 이상의 작업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바닐라 라떼를 한잔 사들고 도착한 사무실에서 안쪽 고리를 걸어 잠그고 작업을 이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너무 욕심 부려 강의를 무겁게 준비했기 때문에 완료 작업이 되질 않았던 것임을 알았다. 4시간의 작업으로 두 개의 강의 준비를 갈무리 했다.
숙제를 끝내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녀는 좀 멋있는 사람인데 한때 그녀는 나의 동료였고, 무역사였으며, 나의 신부였고, 지금은 어엿한 의료인이 되었다. 내 직업 계통에선 누군가를 지칭할 때 ‘플’ 자를 붙여서 부르곤 했는데 나와는 생물학적으로 9살의 나이가 차이가 나는 그녀와 서로 ‘플’자를 붙이며 높여 부르곤 했다. 습관이 되어서 아직도 서로 꾸준하게 높여가며 ‘플’자를 놓지 못함을 보면 웃음이 인다.  ‘언니’ 라고 불러도 되지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플’의 명칭을 나는 놓지 못하나 보다.

많은 추억이 있지만 그 중 강력한 기억 중 하나는, 함께 코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인데, 마지막 리멤버미 장면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서로를 보며 서로 휴지를 챙겨가며 울며 웃었던 기억이다. 나와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행동 하는 것도 비슷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한 사람의 아내가 된 현재를 보면 참 예쁜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처음 오빠를 만났던 시절에서부터 나는 보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나 열렬했던 마음,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결혼과 그 담당이 ‘내’가 되었던 기억들 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기억이 없다. 그녀의 오빠이자, 신랑이자, 내게는 형부가 된, 멋진 그 분은 그녀가 나에 대해서 소개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니, 너 같은 사람이 또 한 사람 더 있단 말이야? 그것 참, 상대 되시는 분이 여정이 쉽지 않겠는걸. 아주 어렵겠어.’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둘은 한참을 웃었다.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고, 그녀는 그녀의 길을 찾아 뚜벅초처럼 걸어왔다. 서로 걸어가는 길이 바빠 예전처럼 자주 연락 하진 못하지만, 문득 이렇게 생각날 때 언제나 반갑게 연락 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게 느껴지는 모른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또 이런 사람을 조우 할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과, 이 정도면 내겐 충분하다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래서 오늘에서의 하루도 참 많이 고마웠다.

내 나이 시절을 걸어온 그녀는, 나를 이해하며, 언제나 하얗게 예쁜 말씨로 내게 이야기 해준다.

‘언젠가 수정플에게도 그런 소중한 사람이 생기게 될 거예요. 그걸 인연 혹은 연인 이라고 부르게 될 텐데, 그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밀어 내려고 해도 밀어 낼 수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게 될 거예요.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원래 그럴 운명 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되고야 말 거예요.’


나는 그녀가 가끔 내 블로그를 정독 한다는 것을 안다. 그녀 스스로 염탐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남겨둔다. 오늘도 그녀는 내게, 이제는 편하게 말 놓으라 했지만 우리는 서로 말 놓으라고 하면서도, 끝끝내 서로를 감싸 안으며 놓지 못한다. 그건, 서로 불편해서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아마도 평생 ‘플’의 명칭을 놓지 못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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