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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지 Oct 26. 2024

싫어했던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살면서 싫었던 사람들은 늘 있었다. 문 앞에 쓰레기를 두고서 며칠을 버리지 않는 앞집 여자나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사생활 보호가 안될 것 같다고 훈수 두던 동네 이웃이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돈은 갚겠다고 말하고 잠수 타버린 룸메이트까지 마치 없으면 극에 재미가 반감되는 드라마의 악역처럼 내 인생에 빌런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했다.


사실 한동안 보지 않으면 안개처럼 조용히 사라지다가도 다시 마주하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천둥 번개 같기도 했던 사람들. 만나는 순간 내 마음에 불편한 경고등이 켜지면서 '싫어요'라고 적힌 포스터잇을 슬쩍 붙여두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은 달랐다. 손이 닿지 않는 아주 애매한 곳에 붙어 있는 빨간색 차압딱지처럼 떼어내려고 할수록 더 강하게 붙어 있었다. 억지로 뜯으려 하면 접착제와 찢어진 종이가 뒤엉키는 것처럼 완전히 없애기도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지도 못했다. 불편한데 안 볼 수도 없는 나를 힘들게 하는데 외면할 수도 없는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관계 그게 나에겐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싫어서였다. 영원히 안 보고 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무튼 그때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떠올리는 게 정말이지 힘들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있어도 긴 병에 부모 없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언니의 병이 길어질수록 지쳐가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언니가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아버지 입에서 듣는 건 참 비참했다. 아버지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겠지만 때로는 그 노력들이 단 한 마디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입원하신 이후로 매일 전화를 하게 되었다. 사실 엄마가 조금이나마 아버지 일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버지는 자신이 열심히 재활을 하고 있고 한 두 달 안에 멀쩡하게 나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몸이 영 말을 안 듣는지 올해 다 지나가도 잘 모르겠다며 낙담을 하시기도 했다. 


어제 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또 똑같은 말 하나보다 전화를 끊으려다가 갑자기 나를 붙잡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다며 아마도 천벌을 받고 있는 거라는 말을 이어가셨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도 언니에게 갖은 구박을 다하며 모진 말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아무 말하진 않았으나 사실 속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입에서 생각 없이 쏟아지는 그 험한 말들이 무척이나 싫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 모습이 너무나 미성숙해 보여 저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도 했다. 아버지라고 해서 늘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에게 발길질이나 하는 후진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특히 아버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가시 돋친 말과 함께 사방으로 튀겨내는 타액을 보고서 마치 유리문이 와장창 깨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튀어버린 유리파편을 피할 새 없이 맞고 있는 언니를 보고서 나는 아버지를 오랜 시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쪽이 이렇게 막말하고 함부로 대하면 우리는 그쪽과 함께 살 수가 없어요. 

아버지라고 부르긴 싫었고 적당히 부를 말이 없어서 그리 말했다. 


마치 아버지는 고해성사를 하는 죄인이고 내가 그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는 신부님처럼 끝없이 자신을 질책했다. 듣다 보니 나라고 이 세상 아무 죄 없이 순결하게 살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싫었던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에게 화살을 던진 게 나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었다고 털어놓는 아버지. 그러게요 왜 그르셨어요 잘못을 묻기보다는 나도 그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야만 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던 이유는 유독 아버지의 말이 잘 들려서인지도 모르겠다. 


니는 못되고 싸가지는 없어도 할 도리는 다 하는 애라서 우리가 고맙다. 욕인 건지 칭찬인 건지. 우리 집에서 할 말 다하는 건 니뿐이고 하고 싶은 거 무조건 해야 되는 것도 니뿐이다. 말하는 거 어찌 그리 싹수없고 그래도 도와줄 건 다 도와주는 이상한 애라고 딸이지만 그런 나를 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버지. 나에 대해 모르는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나를 잘 설명한 말인 것 같아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남편이 누구와 통화했냐고 물었다. 아버지라고 말하니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 했냐며 신기해했다. 그러게 아버지와 이렇게 통화를 할 수 있다니. 아버님 이상하다고 하면서 웬일이냐고 그런다. 그러게 오늘은 웬일로 통화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싫어하던 사람도 괜찮아지는 날이 있구나 하고서. 마음이 닫혀있지도 열려있지도 않은 자동문처럼 돌아가는 이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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