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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지 Oct 26. 2024

엄마의 큰 그릇

엄마는 내가 병에 대해 물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시곤 했다. 그냥 눈은 못 뜨겠고 입에서는 불이 나는 것 같고 이상한 거품도 났다가 그 거품이 모래 알갱이처럼 까끌하게 변하고 얼굴 근육은 마음대로 일그러진다고. 도대체 살 수가 없다며 왜 자신이 이런 병에 걸린 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을 들을 때마다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처럼 믿을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사건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 


 "뭐 그렇게 심각해요. 한 번 찾아볼게요"


엄마를 안심시키려 가벼이 말했지만 한 가지가 아니라 몇 가지 증후군이 합쳐졌다는 사실을 알고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쩌면 병을 치료하는 노력 대신 이 병과 함께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게 엄마를 위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수지야 어쩌다 엄마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픈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할 말은 많이 고민이 된다. 무작정 괜찮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엉엉 울면서 더 슬퍼지게 만드는 것도 좀 그렇다. 한번 운다고 끝나게 될 슬픔이 아니기에. 


"엄마 그거 알아요? 엄마 그릇이 커서 그래요."


엄마는 황당해했다. 나도 우리 엄마가 왜 이리 아플까 계속 질문을 하며 든 생각은 그저 엄마가 이 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닐까였다. 엄마가 이 세상 살면서 담아내야 할게 많아서라고. 그걸 다 품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그릇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듣고서 엄마는 웃다가 우셨다. 그래 오늘 하루 한 번이라도 웃을 일이 있었으면 된 거다. 


사실 엄마가 아픈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함께 대화 나눌 수 있는 건 감사할 일이었다. 아마도 아픈 엄마를 떠올리며 울고 있던 나에게  "그래도 수지 씨는 좋겠다. 엄마가 있잖아요" 한 친구가 자신의 아픔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도 내 행복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나는 엄마에게 상담을 추천했다. 아픈 딸, 의지하기 어려운 남편 그리고 엄마 곁을 평생 떠나지 않을 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엄마도 기댈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담을 통해서 엄마가 병을 받아들이길 바랐다. 병원을 찾아다니며 다른 의사를 만나고 약을 구해보려는 노력보다도 병과 함께 싸우고 있는 엄마라는 사람을 보듬어주길 바랐다. 


엄마 뇌혈관은 미스터리 하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오류로 뇌가 주는 신호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그 뇌류의 오작동을 바로 잡기 위해 전기 신호를 심어야 했고 엄마는 휴대폰처럼 몸 안에 심어진 기계를 충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의사와의 면담 후 나는 엄마의 뇌가 신호를 못 보내는 게 문제라면 신호를 잘 보낼 수 있도록 강한 의지를 키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좀 엉뚱할 수 있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점점 약해져 가는 엄마를 일으켜 세울 의지를 어찌하건 찾아내야만 했다. 


상담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엄마, 특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걸 어색하고 불편해 했다. 엄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딱히 할 말이 없다며 상담사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았다. 사실 말하지 않는 내담자를 전문가라도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터놓는 것이 어려운 사람, 어떻게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어쩌면 마음 안에 켜켜이 쌓이기만 한 세월의 흔적들을 내보내지 못해 이런 이상한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처럼 상담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멀리 있는 딸은 아픈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던져버리고 나는 상담선생님이 하지 못했던 일을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글쓰기 상담. 딱히 정해진 양식이나 룰 같은 건 없었다. 내가 내 마음을 달래던 방식 그대로 그냥 지금 느끼는 감정을 붙잡고 안을 들여다보는 일. 엄마에게 딱 한 가지 부탁했던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100일은 해보자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어찌하면 되겠냐고 첫 과제를 기다렸다.


"오늘 있었던 일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과 그 일을 겪었을 때 들었던 감정에 대해 써주세요" 


엄마는 첫 글로 세 문장을 적었다. 


"오늘은 혀는 괸찮았고 입은 불편해서 종일 껌 씹엇다. 입이 힘들면 눈도 따라 힘들다. 오늘은 날씨탓인지 너무 힘드네" 


마치 뜨거운 여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같던 글씨. 아무런 저항 없이 곧 사라질 것 같은 문장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아리고 시큰거렸다. 


엄마는 병도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도 두렵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냥 힘들면 힘들다 짜증 나면 짜증 난다 세상이 거지 같으면 거지 같다고 쓰면 된다고 말했다. 대신 글씨를 쓸 때 나를 키웠던 것처럼 쓰면 어떻겠냐고 당신이 나를 키웠던 것처럼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그리고 글을 다 쓰고 나면 마무리는 꼭 안정희는 강하다 이렇게 다섯 번을 써달라 부탁했다.


어쩔 때는 장하다처럼 보이는 강하다. 그러게 우리 엄마 너무 장하다. 글쓰기 싫어하는 사람이 용기 내어 글도 다 쓰고. 글을 쓴다고 병을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엄마가 꾹꾹 눌러 쓴 펜에 담긴 그 의지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눈앞에 없으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엄마가 글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깨닫길 바랐다


"수지야, 오늘은 좀 쉬면 안되나? 눈이 아파서 그렇다. 꾀병 아니다 ㅋㅋ" 


내일은 꼭 쓸 거라며 걱정 말라던 엄마. 마지막에 붙은 'ㅋㅋㅋ'를 보고 나도 기분 좋게 엄마를 놓아드렸다. 엄마의 의지와 농담이 함께 느껴져서 참 고마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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