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하너?"
"바쁘나?"
"저나해"
언니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번갈아가면서 왔다. 집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는데 일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언니는 다시 전화를 했다. 오늘은 안 받으면 끝까지 하겠구나 싶었다.
"진짜 아빠랑 못살겠다"
아빠랑 싸웠다면서 울먹거리는 언니. 도저히 같이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데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지. 둘이 싸우는 걸로 전화 좀 하지 마라고 다그치기엔 언니가 많이 속상한 상태였다. 아빠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는 거다.
얼추 들어보니 아빠가 영화관에 가다 말고 강냉이를 사러 갔다는 말인데 그게 뭐가 화가 날 일인가 싶었다. 강냉이를 그냥 먹을 수도 있지 않나? 내 반응에 발작버튼이 눌러졌는지 언니는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바꿔달라 부탁했다. 항상 우리 집은 이렇다. 결국 대화를 나누는 건 나와 엄마다.
"언니는 바로 영화관에 가고 싶었는데 아빠가 막무가내로 그냥 시장에 가야 된다고 그랬다네. 그런데 그 이유가 강냉이를 사야 된다는 거였는데 영화관 팝콘은 비싸다고 대신 강냉이를 먹자고 한 게 아니겠나. 언니는 강냉이 사러 시장에 가는 것도 그렇고 영화관에서 팝콘도 못 사고 강냉이를 먹는 거 자체가 부끄러웠던 거지. 그러게 왜 굳이 강냉이를 들고 가는지 모르겠다 엄마도 도통 아빠가 이해가 안 된다"
나도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아버지는 왜 이상한 고집을 피우시는 걸까. 언니는 영화관에 가는 게 일상의 낙이고 취미다. 혼자서는 가지 못하고 보호자를 동행해야 하다 보니 늘 엄마랑 갔는데 엄마 병세가 심해지면서 간병인 이모랑 가다가 이제는 아빠가 되었다. 아빠 찬스는 정말 마지막까지 쓰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찬스라기보다 또 다른 위기(?)가 될 수 있었기에 언니 입장에서는 끝까지 보류하다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다 큰 딸이 아빠와 영화를 보는 일이 흔하지도 않지만 또 이상할 건 없는데 싶다가도 언니와 아빠의 조합은 다시 생각해 봐도 부자연스럽다. 서로 얼굴 맞대면 미취학 아동처럼 싸우기 바쁜 사람들끼리 나란히 옆에 앉아 영화를 보다니. 오히려 영화 보러 가는 길에 싸웠다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 웃프다 해야 할지.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여보세요를 끝내기도 전에 또 나에게 일렀냐며 언니를 시근 없다며 나무랐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는데 싸운 이야기를 알아서 읊어주셨다. 강냉이 사러 갔다 오면서 영화관 가는 시간이 늦어진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강냉이는 천 원인데 팝콘은 얼마 하는 줄 아냐고 그 느끼한 거보다 백배 천배 강냉이가 낫다고 예찬을 해댔다.
"돈이 아까워서 도즈히 몬묵긋드라"
싸울 일로 싸워야지 싶다가도 사실 나도 아빠와 같은 일로 참 많이도 싸웠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너무 비싸다고 늘 장날에 유통기한 임박한 빵을 떨이로 사 와서 냉장고에 두셨는데 날짜가 한참 지난걸 보고서 내가 모조리 버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통에서 그걸 다시 가져와 드시려는 걸 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싫어서 제발 드시지 말라고 사정했지만 끝내 아버지는 자신이 먹을 거라며 빵을 감싸 안고서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결같이 무언가 선택하는 기준은 저렴하기 때문이다. 같은 게 있다면 가격 상관없이 더 좋은 걸 사는 내가 어떻게 아버지의 딸이 되었을까? 아버지의 선택 기준은 늘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늘 아버지 옆에 있기가 싫었는데 나까지 초라해지고 없어 보일까봐서다. 특히나 손이 호미처럼 꺾여있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걷는 40대 장애인 딸과 70대 아버지가 강냉이를 들고서 영화관을 입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더 속상해졌는 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가난했다는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가 지겨운 신파극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신파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억지로 무언가 감정을 끌어내려는 것 같아서다. 나는 울고 싶지 않은데 나를 울게 만드는 이상한 스토리. 마치 나는 듣기 싫지만 아버지가 가난했던 걸 매번 들어야 했던 것처럼. 그 뻔한 이야기가 싫다가도 한 번은 울컥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다. 어쩌면 아버지가 황정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영화를 본 뒤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였다면 저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싼 것에 집착하는 아버지가 지키려는 돈, 그 함축된 의미는 내가 아버지가 되어 살지 않는 이상 절대 알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왜 우리 가족은 고작 강냉이 갖고 이리 싸움을 해야만 할까 왜 팝콘 먹으며 즐겁게 영화 구경을 하지 못할까 뭐 이리 궁상맞을까 싶다가도 뭐 가족이라고 해서 꼭 근사해야만 하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작은 일로 투닥거리다 갑자기 큰일이 되더라도 또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사는 게 가족일 테니.
언니에게 팝콘을 먹고 싶다면 직접 언니 돈 주고 사 먹으면 되고 아버지가 강냉이를 사 먹든 말든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겐 영화관에서 팝콘 먹는 건 국룰인데 아버지가 그 룰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둘 다 알아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내년에 한국에 가면 나도 팝콘 대신 영화관에서 강냉이 두 봉지 사들고 영화 보자 하면 가족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하자고 하면 이상하지만 내가 하자면 또 반색을 할 때가 있는데 이게 멀리 사는 딸의 특권이기도 하다. 어색하지만 내가 아버지 옆에서 걷고 언니는 엄마 팔짱 끼고서 강냉이 들고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 같이 쭈뼛쭈뼛 친하지 않아 어색하게 걷는데 그 모습이 근사하진 않아도 또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음식은 안될 거 같다. 어찌해도 우리 아버지는 팝콘보다는 강냉이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