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글즈를 보고 있었다. 한 여성 출연자가 자신과 커플로 매칭된 남성을 아버지에게 소개하는 장면이었는데 나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여자의 아버지가 "두 사람 다 아픔이 있을 텐데 서로 잘 보듬어서 만나길 바란다"며 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데 그 눈길에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딸을 저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내가 느껴본 적 없는 다정함과 애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제작진은 그 여성 출연자에게 "당신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인가요?" 물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방패요'라고 대답했는데 어렸을 때 엄마가 등을 때리려 하자 아빠가 자신을 감싸 안고서는 대신 맞아줬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줄곧 자신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지켜주려고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문득 나도 궁금해졌다. 그런데 막상 잘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버지를 설명할 만한 단어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TV 속 출연자의 아버지처럼 정이 넘치신 분도 아니었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본 기억도 없고 잊지 못할 정도로 즐거웠던 추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재작년 여름, 아버지가 일하던 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잠시 한국에 있을 때 남편을 아버지가 일하는 곳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남편에게 옛 동네 구경을 시켜주며 내가 롤러스케이트도 자주 탔고 저 주자창 언덕에서는 눈 내리면 쌀포대 가져다가 썰매를 타기도 했다고 어릴 적 추억들을 들려주었다. 사실 대화 나누면서도 아빠 일터가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되기도 했는데 예전에 내가 살았을 때 주민이었던 누군가를 만나진 않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아버지 직장은 예전에 퇴임식 때 한 번 참석한 적은 있지만 생각해 보니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 후 다시 일자리를 찾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쁘기보다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한국에 가게 되면 한 번쯤은 꼭 찾아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파트 입구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계셨다. 데님블루색 유니폼을 입고 계신게 낯설어 보였는데 세탁을 여러 번 거친 탓인지 꽤 바래진 옷이었다. 안 그래도 왜소한 체격이 유난히 더 작아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말은 반대로 튀어나왔다.
"유니폼 입으시니까 그럴싸해 보이네요."
"이 옷도 다 바래가 파이다"
아버지는 여기까지 굳이 뭐 하러 왔냐며 투덜거리셨다. 택배 온 거 정리해야 해서 바쁘다고 하시면서도 냉장고에서 음료수 두 개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셨다. 사실 나라고 오는 길이 즐거웠을까. 아버지가 일하는 곳까지 굳이 와야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오게 된 건 그저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30년이 넘은 아파트 경비실 내부에는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두꺼비집처럼 생긴 각 세대와 연결되는 듯한 수십 개의 스위치들은 내가 어렸을 때 경비실에 열쇠를 찾으러 갔을 때 본 것과 똑같았다. 그때는 불이 깜빡거리던 스위치들이 지금은 어느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았다.
1평 남짓한 공간에는 냉장고, 화장실, 의자 두 개, 벽걸이형 선풍기, 그리고 식탁으로 쓰는 나무판자가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살펴보며 "있을 건 다 있네요"라는 말이 무심코 나왔다. 내부에 오래 있을수록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마치 오래된 것들을 한데 모아 만든 향수를 쏟아놓은 듯 짙게 퍼져 있었다. 아버지 옷에서 맡았던 익숙한 냄새였지만 이곳에서는 몇 배나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뉴스에서 보도되는 경비원들의 안 좋은 처우와 열악한 환경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였다. 아버지는 이제 됐다며 내가 얼른 이곳을 떠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경비실이 멋지거나 세련된 곳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가족이 좋은 것만 공유하는 사이라면 우리는 이미 가족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오래 머물 마음은 없었기에 곧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보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이유는 그 공간이 주는 열악함 때문이 아니라 쉼 없이 일만 해온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 이 많은 시간을 지금까지 바쳤는지 알고 있어서일까 마음 한구석이 꽤 오래 먹먹해졌다.
냄새가 나고 투박하며 딱히 눈에 띄는 쓸모가 없어 보이는 흙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이런 흙을 많이 닮았다. 쾌쾌한 냄새와 거친 질감을 가진 하찮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주변에 널리고 널린 흙. 오랜 시간 동안 떠나지 않고 묵묵히 나무의 뿌리를 감싸며 생명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주면서도 그 가치가 쉽게 잊히는 것처럼. 지금 경비실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그런 흙과 닮았다.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나무를 지탱하는 흙처럼 내 삶을 묵묵히 받쳐주던 존재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 그리고 지금 병원에 계신 아버지. 울렁거리는 마음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그 귀한 노고와 시간에 조용히 감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