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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지 Oct 26. 2024

나의 착한 스토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극 중 영옥(한지민분)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문자 알림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휴대폰이 울리는 걸 보고도 무시한 채 화장대에 앉아서 로션을 바르려 했는데 진동 소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신경이 쓰였는지 휴대폰을 확인해 보는데 무서운 속도로 한 글자씩 메시지가 전송되고 있었다.


보.고.싶.어.

보.고.싶.어.


아련하고 설레는 말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찍히면 공포스럽기도 하다. 


사실 그 장면을 보면서 영옥이 마치 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 속 영옥은 때로는 언니의 연락을 무시하거나 피하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언니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 나도 그랬다. 언니 이름이 뜨면 휴대폰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지인이 누구냐 물어볼 때 "아 나중에 받아도 되는 전화요" 말하곤 했다. 어쩌면 영옥에게 공감을 한 것도 언젠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읽혀서 인지도 모르겠다. 


"내 사진 대글 댓글"


오랜만에 인스타에 접속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언니에게서 DM이 왔다. CCTV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하루 종일 네모 세상에 사는 건지. 언니는 자신의 사진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댓글을 달지 않으면 계속 성가시게 할 게 뻔하니 사진을 확인하려는데 이미 9명이 댓글을 남겨두었다. 하나같이 억지로 쓴 듯한 형식적인 글들. 전부 언니의 부탁을 받고 온 사람들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을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버렸다. 


아마도 수십 번은 말했을 것이다. 제발 사람들에게 구걸하듯이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처음엔 차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다가 결국 소리치며 싸우기도 했고 화가 나서 휴대폰을 뺏어본 적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언니를 아이처럼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니는 댓글에 좋아요가 없으면 속상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더 많이 봤으면 해서 연락을 멈추지 않는다. SNS뿐만 아니라 심심할 때마다 무분별하게 연락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언니를 떠나갔다. 언니의 한 고등학교 동창은 제발 연락하지 말라며 차단했는데 언니는 그 친구와 친한 또 다른 친구에게 차단을 풀어달라 부탁하며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갔다. 나 역시 가까운 친구들에게 언니가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도 답하는 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미리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곤 했다.


아프기 전, 언니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먼저 연락을 잘 하지도 않았고 이모티콘은 낯간지러워 고맙다 짧은 메시지만 보내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많은 연락과 무리한 요청을 끊임없이 하는 언니를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언니는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 이제는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고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답게 판단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느 날 언니가 ‘기쁘다, 기쁘다’라는 말과 함께 하트가 팡팡 날라다니는 이모티콘을 반복해서 보냈다. 매주 복권을 사는 언니라 소액이라도 당첨된 건가 싶어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건 여러 장 인쇄된 증명사진이었고 그건 다름 아닌 내 아들의 사진이었다. 순간적으로 어디서 이걸 구했을까 싶어 머릿속이 멍해졌다. 분명 한국에 있을 때 언니가 여러 장 달라고 했지만 내가 한 장만 줬던 사진이었다. 


내가 떠난 후에도 언니는 그 사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채 결국 시내에 있는 사진관을 지인에게 부탁해 하나하나 찾아다녔던 것이다. 


시내를 헤매다가 방문한 네번째 사진관에서 언니는 조카의 사진을 발견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서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잘 알고 있어서다. 분명 나에게 물었다면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왜 또 필요해?' 짜증을 냈을 것이고 결국 사진 찍은 곳을 알려주지 않았을 거란 걸 언니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사진을 주고도 많이 남아있다며 좋아라 하던 언니. 자신이 사진관을 찾아냈다며 마치 심부름 마치고 돌아온 아이처럼 칭찬을 바라듯 들떠 있었다. 사진이 많아서 휴대폰 케이스 앞뒤로 두 개나 넣을 수 있다며 흡족해했는데 그렇게 휴대폰 앞에 사진을 두면 누가 아들이라 물어보겠다 말하니 아들 같은 조카가 맞으니 자랑할 거라 그랬다. 다음부터 이러지 말아달라는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그때 사진을 더 주지 않은 미안함에 오늘은 잔소리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언니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람들이 언니를 싫어하고, 귀찮아하고 무시할까 봐 두려워진다. '우리 언니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래요. 전두엽이 손상되면 판단력이 저하되고…' 이렇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현실이 나를 억울하게 만든다. 그저 사람들이 언니를 이상한 스토커로 오해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내 자신이 차라리 언니가 세상과 조금 덜 연결되기를 바라는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어쩌면 사진관을 헤매며 찾아다녔던 그 길은 언니가 마음 편하게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하다 진짜 열심히 하네(하트)(하트)(하트)"


점핑대에 서서 전신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언니의 사진에 댓글을 남겼다. 짧게 썼다고 뭐라 할까 봐서 하트를 세 개나 붙였다. 그래야지 다시 댓글 쓰라며 경주마처럼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테니까. 언니는 진심으로 쓴 글은 또 잘 알아본다. 


언니에게 심심해서 누군가와 연락하고 싶을 때는 제일 먼저 나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말했다. 전화는 싫다고 했다. 부재중 전화가 많이 남아 있으면 진짜 스토커 같아서 불편하다고 말하니 언니는 왜 자기가 스토커냐며 버럭 신경질을 냈다. 대신 문자로 "시간 있어? 대화할 수 있어?"이렇게 정중하게(?) 보내면 잠깐 수다 떨자는 신호로 받아들이겠다고 전했다. 말하면서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나의 착한 스토커는 악의는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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