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내게 부탁을 잘 하지 않으시지만 엄마가 도와달라고 말할 때는 정말 절실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 슬프게 들렸던 "부탁"이라는 단어가 그날따라 무게감이 남달리 느껴졌다. 사실 본론은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게 뭐든 도와야겠다 생각했다.
엄마 전에 언니가 내게 울며불며 전화가 왔던 것도 자기 휴대폰이 초기화가 되었다고 어찌하면 좋겠냐고 당황을 하면서다. 사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어찌 도와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갤럭시에 대해서 모른다"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왜 자기 휴대폰 고장 난 것까지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지 듣자마자 귀찮아졌다. 그런데 내가 도와주지 않으니 엄마를 볶아댔고 그걸 감당하지 못해 결국 언니와 함께 서비스 센터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일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신 거다.
처음부터 축 처진 목소리로 울음을 삼키며 말했기에 언니와 엄마가 꽤나 많이 속상한 일을 겪은 것 같았다. 단순한 불친절인지 아니면 정말 모욕적으로 사람을 대했는지 엄마와 언니 말만 들어서는 사실을 알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과장해서 말하는 언니와 다르게 큰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엄마 성격을 알기에 두 사람이 당한 일이 그리 가벼운 일로 여겨지진 않았다.
언니의 설명을 직원이 알아듣기 어려워했고 엄마도 함께 있었지만 당시 몸 컨디션이 엉망이라 그냥 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계셨다고 한다. 나는 처음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가 나기도 했는데 사실 이 분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픈 엄마를 끌고 간 언니 때문인지 아니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언니를 센터 밖으로 내보내려 했던 직원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언니를 도와주지 않고 이런 일을 겪게 만든 나 때문인 건지.
처음에는 언니와 엄마를 슬프게 만든 A 직원에 대해 컴플레인을 걸고 싶어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쫓겨나듯 나와서 찾아간 다른 센터에서 만난 B직원에 대해 말하며 "제발 이 사람 칭찬하는 글 하나 싸주면 안 되겠냐" 부탁하셨다. B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엄마는 어찌해야할지 방법을 모르셨다.
"수지야 사람 칭찬하는 데 있잖아, 그런 걸 좀 찾아봐주라"
A직원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B 직원은 20분 만에 해결해 주었다. 언니는 휴대폰을 받자마자 선물 받은 아이처럼 날뛰었고 엄마는 감사하다 인사하며 눈물이 맺히셨다고 했다. 누가 보면 오바스러운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언니와 엄마에겐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휴대폰이 베프인 언니는 다시 친구를 소생(?)시켜서 기뻤고 엄마는 자신의 딸이 겪은 지난 일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 B직원이 세상 누구보다 고마웠을 거다.
언니가 장애인이 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바깥 시선이 극도로 불편했었다. 언니와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몰라서 째려도 봤다가 기분 나쁘다 욕도 했다가 며칠은 속에 담아 두고서 씩씩거리기도 했다. 왜 이런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장애인을 너무 다른 부류로 대하는 사회적인 인식에 분노가 끓기도 했다.
추측하건데 B직원은 내 예전 모습을 많이 닮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도 장애인을 많이 겪어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니 대처 방법을 몰라서 본인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혼선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나도 어릴 적 같은 동네 살았던 인지 장애를 가진 이웃 오빠에게 "그 바보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어" 엄마에게 여러번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오빠의 초점을 잃은 텅 빈 눈빛이 무서웠지만 엄마는 절대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나무랬다. 걸음거리, 말투, 눈빛 전부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달라서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언니가 인지장애를 가지면서 그 오빠는 얼마나 내 눈빛이 재수없고 불쾌했을까 떠올려 보게 되었다.
겪은 만큼 얻어지는 게 있다면 나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특별하게 보지도 다르게 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도와드리고 싶듯이,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묻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나서지 않는다. 장애는 이상하게 바라볼 것도 불쌍하게 여길 것도 아닌, 또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한 손과 한 다리로 또 누군가는 휠체어를 타고도 살아갈 수 있는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언니는 뇌의 80%가 손상되고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알아서 다 이해해주는 착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굳이 단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 같아서다. 나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점점 더 좋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되려면, 모두가 장애인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전엔 사회가 언니를 더 따뜻하게 바라봐 주길 원했고, 장애인을 위한 편리한 시설이 더 많아지길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보다 엄마와 언니를 함부로 대했던 직원이 다음에 또 장애인을 만난다면 그때는 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언니와의 경험이 그 사람에게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B 직원은 언니가 예전에 나와 함께 아이패드를 사러 갔을 때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엄마와 언니가 그를 찾아갔던 이유도 어쩌면 나와 같은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그 직원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으로 대했을 것 같다. 그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고객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B 직원 같은 분들을 임시 울타리 장인이라 부르고 싶다. 이분들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끼고 따뜻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다.
나는 엄마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명함에 적힌 이름 석자를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감사의 의미를 전하고 싶어 사원을 칭찬하는 공간에 진심을 다해 글을 썼다. 칭찬합니다 게시판에는 여러 직원을 칭찬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와 있었다. 친절이 사람을 이토록 기쁘게 만든다는 걸 모두가 증명하는 듯 읽으면서 덩달아 흐뭇해졌다. 이래서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되는 것이 세상이 너무 팍팍하지만은 않구나 선인들은 또 여기저기 있긴 하구나 싶었다.
내년 여름 한국에 갈 때 스웨덴에서 맛있는 과자를 사갈까 고민 중이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가도 집어먹기 좋은 초콜릿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뭘 살지 고민하다 보니 정말 뭐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잠시나마 우리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삼성전자서비스 창원센터를 다녀오시고 어머니께서 저에게 울면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처음에 집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제게 명함 한 장을 카톡으로 보내주시면서 한 직원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언니는 뇌병변 2급 장애를 앓고 있기에 일반적인 성인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니가 휴대폰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창원 도계동에 위치한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서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장애로 인해 낯선 사람,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는 위축감을 느껴서 말을 평소보다 심하게 더듬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의사전달에 자주 어려움을 겪고요. 그런데 도계동에서 만난 직원 분은 비밀번호를 초기화하면 데이터 복구가 어렵다, 살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언니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내려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같이 동행하셨지만 몸이 불편하신 상태입니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만 하셨지 선뜻 언니를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데 가보시라는 말에 더 이상 언니를 그곳에 둘 수 없어 창원 센터로 이동했고 그때 임대희 매니저님의 안내를 다시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도계동 센터와는 달리 임대희 매니저님께서는 20분 만에 사라진 데이터를 모두 복구해 주셨다고 합니다. 휴대폰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도 했지만 임대희 님께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대해주신 모습에 감동을 받아 어머니께서는 매장에서 눈물이 맺히셨다고 하네요. 사실 제품을 구매한 고객도 아니고 데이터 복구라는 다소 성가신 업무를 부탁드렸으며 의사 전달이 힘든 장애인 고객의 요청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응대해 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친절은 청각장애인이 듣고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언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픈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늘 걱정하고 가까이서 도와주지 못해 멀리서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베풀어주신 친절로 인해 가족이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보호를 받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덕분에 제 마음이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서 따뜻한 봄이 되기도 했네요.
멀리 살고 있어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임대희 매니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수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