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 이전에 삼킬 수 있는 행복
"언제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는 저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연하장애로 음식을 삼킬 수 없었던 언니는 코줄로 영양을 섭취했다. 드링크류만으로 살아가는 언니가 과연 괜찮을지 늘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는 더 이상 음식을 먹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마치 벌과 나비처럼 꿀 같은 액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손 마디만한 그들과는 다르게 170cm나 되는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머리는 바람 빠진 농구공처럼 푹 꺼져 있고, 코는 배고픈 코끼리처럼 축 늘어진 고무호스가 매달려 있던 언니의 모습. 누군가 흠칫 놀랄 만큼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언니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처럼 먹고 씹고 삼키는 걸 하지 못했다.
사실 먹는 행위 자체를 고민한다는 건 나에게 낯선 일이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을 만큼 먹는 건 늘 즐거운 고민이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동안 이 즐거움을 송두리째 잃은 언니와 함께 살면서 나도 마치 물만 마시며 사는 기분이 들었다. 오직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다는 형벌 같은 이 상황 속에서 내가 몰랐던 소소한 행복이 목을 타고 흐르는 순간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음식을 씹어서 목으로 넘기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신체 기능 중 하나다. 딱딱한 음식은 더 열심히 씹으면 되고, 부드러운 음식은 혀로 핥거나 호로록 삼켜버리면 그만이듯이. 하지만 뇌졸중으로 다시 태어난 언니는 그 쉬운 일을 하지 못해 매 끼니마다 코로 500ml 영양음료를 마셔야 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살았던 인생,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 것은 단지 아쉬움이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입에 넣을 수 없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언니와 함께 있으며 음식을 먹고 씹고 삼킬 수 있는 게 어떤 신비한 능력처럼 느껴졌다.
뇌출혈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언니가 다행히 지킬 수 있었던 건 파편처럼 남아있는 옛 기억들이다. 음식을 먹었던 추억을 떠올려보라 말하며 언니에게 부드러운 요거트, 으깬 바나나를 먹여보았다. 이 음식은 기억하지만 이걸 먹는 방법을 까먹어버린 언니에게는 세상에 이보다 어려운 일이 없었다. 음식을 목으로 가져가며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야 했다.
매 끼마다 수십 번 시도를 하며 조금씩 먹는 방법을 익혀나갔던 언니는 다행히 연하장애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시중에 파는 일반 요거트에 목 넘김을 관찰할 수 있는 약을 섞어 환자에게 먹여 관찰하는 테스트이다. 언니 앞에 검사를 받았던 할머니가 실패를 했나 보다. 보호자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1차 시도에는 잘하셨는데 2차 시도는 안타깝게도 실패, 결국 할머니는 다시 코줄을 끼고 드링크를 드셔야 했다.
드디어 언니 차례가 되었다.
"언니야 잘할 수 있다. 그냥 예전에 언니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는 걸 기억해 봐라."
언니는 왼손으로 뼈를 뜯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갈비? 닭다리? 대답하자 언니는 닭다리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언니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이어 반신이 투시되더니 마치 할로윈 파티에서나 볼 법한 형광색 해골이 화면에 나타났다. X선 촬영으로 비디오 투시를 하며 조영 검사를 진행하는데 언니는 요거트를 세 번 정도 씹었다. 그 음식이 식도를 타고 어떻게 넘어가는지 눈앞에서 지켜보았는데 음식을 우리 몸으로 들여보내는 과정이 마치 해부학 책 속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정수연 님, 축하드립니다. 이제 원하시는 음식 천천히 드세요 "
꼴깍꼴깍 용기있게 삼켜가던 언니의 요거트는 식도를 넘어 위장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요거트가 입 주위에 범벅이 되어 마치 거품을 문 것 같았지만 언니나 나나 그런 행색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목청에서 나오는 동굴 속 울림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 소리는 마치 동물의 표효처럼 들렸지만 언니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좋아서 일어나고 싶었는지 휠체어에 앉은 채 엉덩이를 철퍼덕거렸다. 뒤에 기다리던 환자의 보호자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고 좋은 기운을 나누어달라며 언니의 손을 꼭 잡기도 했다.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언니에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비비비비 비비비비"
"뭐? 비비 윙스?"
평소에 언니가 좋아하던 치킨 브랜드. 그날 저녁 주치의의 허락을 받자마자 얼른 주문했다. 하나 둘 셋 천천히 숫자를 세어가며 씹고서 안전하게 닭고기를 삼켰다. 음식을 온전히 자신의 몸 안에 들이기까지 이 험난한 과정을 마침내 해내게 되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언니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 전부 알아챌 수는 없었다. 그걸 하나하나 다 사주고 싶어서 언니가 즐겨먹었던 음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화요일은 김치볶음밥 먹을까? 수요일은 햄버거 먹을까? 언니가 되찾은 것은 단지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었다. 음식을 떠올리며 설레는 기대감,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 퍼지는 행복, 그리고 마지막 한 입을 넘기고 느껴지는 포만감까지. 이 세 가지 기쁨은 어둠 속에서 망망대해를 떠나니던 우리 가족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희미하지만 굳건한 등대와도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되찾아 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