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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지 Oct 26. 2024

저런 게 언니라면 필요 없지

나에게는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다. 보통 자매끼리는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 다투면서도 가깝게 지내기 마련인데 우린 그렇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다. 우선 언니랑 같이 논 기억이 없다. 그래도 한두 번은 있을 법한데 일부러 도려낸 것처럼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언니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언니와 난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늘 떨어져 지냈다. 나는 주로 베란다에서 혼자 인형놀이를 했고 언니는 아래층에 사는 언니, 오빠와 자주 어울렸다. 나도 함께 그들과 놀고 싶었지만 아무도 날 끼워주지 않았다. 첨에는 날 차갑게 쳐다보는 아래층 오빠의 눈빛을 보고서 분명 저 사람이 날 따돌리는 주범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집에서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언니를 보면서 혹시 언니가 나를 이상하게 말한 게 아닐까? 그 점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좀 커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자애들 싸움이 뭐 별거 있겠어? " 하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게 있었다. 머리 채를 잡고 몸을 발로 걷어 차고 손에 잡히는 건 상대에게 다 집어던졌다. 세상에 이런 개싸움이 없다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싸웠는데 꼴 보기 싫다고 누군가 자기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면 그 문을 부수어서 싸움을 이어갈 정도로 거칠게 싸웠다. 엄마가 옷을 같이 입으라 한 벌만 사 오는 엄청난 실수(?)를 하셨을 때 그걸 먼저 입을 거라고 그 옷이 찢어질 때까지 싸우는 게 언니와 나였다. 


가끔 정상적인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긴 했다. 예쁜 옷 같이 입고 맛있는 거 사주고 공부도 도와주는 착한 언니가 왜 나에겐 없는 건가. 어렸을 때 언니와 좋았던 추억을 생각하려니 차라리 바닷속에 빠진 휴대폰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모르는 선배에게 끌려가 화장실에서 맞은 적이 있었다. 내가 잔반통에 수저를 던진 탓에 자기 얼굴에 고인물이 튀었다고 내 얼굴을 멍이 들 때까지 때렸다. 나는 코뼈에 실금이 가서 전치 3주가 나왔고 그 선배는 그 일로 수능을 못 쳤는지 정학을 당했는지 꽤 곤란한 처지에 놓였었다. 그걸로 끝났으면 됐는데 그 선배의 친구들이 자기 친구 인생 망쳤다며 협박 문자를 보냈었다. 그때부터는 무섭고 두려웠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제외, 엄마도 앞에 나서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게 언니였다. 이럴 땐 성격 더러운 게 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당시 언니는 스무 살이었고 성인이었기에 나를 때린 고3 선배에게 제대로 한 마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날 싫어해도 이건 도와주겠지 용기 내어 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꽤 충격적이었다. 


"맞을 짓 했으니까 맞았겠지. 꼬시다 "


그날 나는 부모님을 잃은 아이처럼 정말이지 서럽게 울었다. 내가 죽어도 저 악마 같은 여자는 슬퍼하지 않겠구나. 저런 게 언니라면 필요 없는데 왜 태어나서 날 힘들게 하는 거지? 언니를 이 세상밖으로 내치는 상상을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인생이 편하고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언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언니가 가장이 되었을 때 그때도 어릴 적 언니는 나에게 베풀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저 언니가 힘들 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여겼다. 예전처럼 대들진 않았지만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고 가까이하기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쏟아지는 이 모든 기억들을 감당할 수 없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상태가 많이 위급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들, 그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언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최대한 빨리 와야한다는 슬픔을 있는 힘껏 눌렀던 고모의 침착한 목소리는 내 귓속을 뚫고 들어와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준비운동도 없이 너무 급하게 달렸던지라 옆구리에 총알이 박힌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천천히 갈 수는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중환자실 복도 앞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울면서 나에게 달려오던 엄마. 그 공간은 무겁고 탁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고 숨을 들이쉴수록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하게 조여왔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 한 바퀴를 돌고도 언니를 찾지 못했는데 엄마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이미 내가 지나친 환자였는데 퉁퉁 부은 얼굴에 민머리 그 위에는 잔인하게 수십 개의 호스가 꽂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언니의 감긴 눈에는 완두콩만 한 작은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언니야~"

너무 다정하게 불러서 어색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가.


"야 일어나라"

너무 시건방지게 불러서 재수 없어서 일어나지 않는 건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언니를 부르면서 불현듯 내가 언니를 이 세상 밖으로 내쳤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런 게 언니라면 필요 없다는 말은 내가 너무 어려서 그랬어. 어렸을 때는 뭘 잘 모르잖아.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일어나주라.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데?


새어 나오는 눈물을 멈추고 싶어 온 힘을 다해 눈물꼭지를 잠그느라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했다. 지금 잠그지 않으면 절대 눈물이 멈출 수 없을 거 같았다. 우는 건 나중에 아주 나중일이라 생각했다. 


언니가 불행했으면 좋겠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내 어릴 적 소원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굳이 내 바람을 이렇게까지 들어줄 필요는 없었는데 신을 원망할 종교도 없었고 허공에 대고 소리치기엔 더 큰 벌이 주어질까 두려웠다. 이제는 다신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처절하게 빌었다. 사람을 함부로 해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언니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언니가 필요했다. 저런 언니라도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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