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들의 세계
SNS에 임신중독증을 알리는 피드를 작성한 뒤 수많은 응원의 글과 경험담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난산을 경험한 산모들이 많을 줄이야.
1kg이 채 안 되는 아이가 세상에 나와 너무나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겨우겨우 주수를 채우고 나왔다는 이야기는 흔할 지경이었다. 27주에 출산한 친구는 담담하게 우리 애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못살았을 거라며 지금은 의학이 발달돼서 안전하다고 이야기한다. 하필 그 친구가 간호사라 그런지 T성향의 나에겐 꽤나 안심이 되었다. 동시에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걱정이 되는 묘한 기분이 드는 대화였다.
처음 입원 한 날은 자리가 없어서 아주 큰 가족 분만실, 그러니까 상급병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2인실로 병실 이동을 했다. 며칠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건너편에 있는 다른 산모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소리만 전해질뿐. 촤르르 걷히는 커튼 사이로 우리는 동거 중인 묘한 사이가 되었다.
어제부터는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저분은 왜 입원 중일까? 회진 시간이 되면 괜스레 귀를 쫑긋이게 되었다. 저분의 아기는 몇 주나 되었을까? 궁금증이 들던 참이었는데 오늘 오전에야 알게 되었다. 27주 산모.
너무 짧은 자궁경부 때문에 조산 위험으로 입원해 있는 산모였다. 27주. 아기는 1kg 남짓 할 것이다. 27주. 겨우 7개월이다. 아직도 3개월을 더 채워야 하는 임신 중기의 몸이었다.
자꾸만 임신 이야기를 해서인지 내 SNS 알고리즘은 온통 임산부 들과 신생아들로 도배가 되어 있던 참이었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어 오른 있는 모습 그대로 예쁜 그녀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껴졌다. 분명 나의 모습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몇 주 사이 나는 고위험 산모가 되어 휠체어를 타게 된 신세라니.
그런데 또 간간히 도착하는 메시지들에서 상대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른둥이 엄마들 사이에선 35주 넘기는 게 꿈같은 일이라며, 2kg가 넘는 아이를 낳는 게 소원이었다며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나는 그들이 소원하던 그 경계를 간신히 넘어왔다. 그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소르르 내려앉는다.
나와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한 채 같은 방에서 지내고 있는 건너편 산모님도 어쩌면 내 상태를 소원할지도 모른다. 부디 35주를 넘기길, 배가 더 많이 부풀어 올라 살이 포동 해진 아이와 함께 퇴원하길.
얄궂다.
앞을 보면 부러운 것 투성이고
뒤를 보면 감사한 것 투성이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 투성이다.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는 이 안전한 곳에 나와 아이의 안녕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런 행운이 깃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게 불행이 깃들 때 비로소 내가 가진 것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루에 깃든 행복을 잘 찾아내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내게 불행이 찾아온 것도 어쩌면 내가 누리던 행복을 더 잘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내게 닥친 이 상황은 사실 불행이 아니라 행운과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