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스페인에서의 이슬람 왕조 역사를 터치할 수밖에 없어 이 부분을 짧게 언급하고 가야겠다. 사실 제대로 담자고 하면 우리나라 고조선에서부터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지정학을 함께 다루는 것처럼 어렵지만, 나는 그렇게 까지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적을 수도 없다. 정말 여행을 할 때, 아니면 다녀와서 그 도시를 간략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공부를 하는 것이 내 목표이므로 왜 그라나다?라는 이해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적겠다.
이베리아반도 (스페인+포르투갈 남서부 등)에는 이베리아인과 켈트족 등이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700년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로마제국의 지배 흔적은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보겠다. 로마제국 쇠퇴 후 혼란기를 틈타 게르만족이 서고트왕국(서기 409~711년)을 수립해서 300년간 기독교 국가였다가, 711년 이슬람 세력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진입 후 1492년까지 700년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슬람 세력 지배기간 내내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기 위한 레콩키스타 (Reconquista) 운동이 진행하는데, 마지막 이슬람 왕조였던 나스르 왕조가 있던 그라나다를 함락하며 스페인에서의 이슬람 지배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스페인은 줄 곧 기독교 정확히 말해 가톨릭 국가이다.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가면 크게 두 가지 양식의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슬람 건축양식을 가진 건물로는 나스르 궁전 (Palacios Nazaries)과 헤네랄리페 (Generalife) 여름 별궁, 군사 요새인 알카사바 (Alcazaba)가 있다. 그리고 1492년 기독교가 그라나다를 정복한 뒤 남긴 건축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왕실 예배당과 수도원도 볼 수 있다.
나스르 왕조는 기존 이슬람 왕조의 왕위계승이나 찬탈로 일어나지는 않았고 1238년 그라나다 주변에 있던 이슬람 귀족이 스스로 독립된 이슬람 왕국을 수립해서 나스르 왕조 (Narsid Dynasty)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왕조는 기독교에 항복한 1492년까지 254년간 지속되었는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다른 왕조들이 다 물러난 뒤이다 보니 결국 스페인에 남아 있던 이슬람의 마지막 왕조가 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보면 1812년 나폴레옹의 의해 성벽 폭파 시도가 있긴 했지만, 약간의 흔적 외에 대부분의 건물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어 짧지만 찬란했던 나스르 왕조와 이슬람의 문화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 알함브라 나스르궁을 방문한 분들은 반복적인 기하학 패턴과 치밀한 대칭, 저런 곳까지 패턴을 조각했다고? 하는 생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실제 구조물을 완성하는 데까지 6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뒤 패턴을 입히는 작업은 너무나 정교하고 방대해 아마도 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궁에서 패턴을 보고 있으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데, 아마도 이 작업을 진두지휘 했던 사람은 조각뿐 아니라 종교, 수학, 과학, 철학에 모두 능통한 사람이었어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곳에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또 다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슬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이나 동물 묘사를 통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어 추상적인 기하학, 식물문양, 성전 (Quran) 구절을 중심으로 장식을 한다고 하는데, 신의 무한함을 상징하기 위해서 이러한 패턴을 반복 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방문하기 전 대단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나스리 궁의 방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와~!‘ 하는 탄성은 ’하…지독하다.’라는 탄식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은 패턴에서 징그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색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어지러운 패턴에서 오는 난잡함은 없어서, 가까이에서 보면 전쟁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방은 나에게 우주가 되어줬고, 다른 방은 기도의 공간이, 또 다른 방은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웬만한 유명장소는 가이드투어를 진행했는데 알함브라 궁전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가이드 투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곳이니 방마다 챗 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설명을 듣기도 쉬웠고 우리 가족의 관심도에 따라 어느 곳은 여유 있게 어떤 곳은 빠르게 지나갔다. 가이드 투어를 오신 분들은 가이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듣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우리는 중간중간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천장에 그려진 패턴을 올려다보고, 챗지피티의 설명에 따라 어디가 대칭점인지도 찾아보곤 했다.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가만히 앉아 온방을 이루는 전체 디자인을 찬찬히 둘러보고 느껴보시기를 권유드린다. 그리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지나가는 중간중간 의도하진 않았지만 짧은 귀동냥도 가능하다. 물론 가이드가 없다 보니 동선을 잘 못 잡아 길을 엄청 돌아다닌 단점도 있으니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택하시기를…. (저는 길을 몇 번 헤매는 바람에 아이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어요ㅎ)
알카사바에 가는 길에서는 ‘어 여기 현빈이 사라졌던 지하감옥 입구다!’ 이런 반가움들은 있었지만 가장 먼저 나스리 궁전을 본 이후로 그 어떤 건축물에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는데…. ㅎㅎ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 … 어렵게 가셨으니 그래도 전체를 다 둘러보시길 바란다. 특히 알카사바 요새는 올라가 보면 그라나다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선사해 주니 꼭 방문해 보시기를 권장한다. 참…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만 구매하고 나스리 궁 입장권을 따로 예매하지 않아 입장을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여럿 보았으니 향후 방문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티켓이 두 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인지하시길 바란다.
이렇게 알함브라와 플라멩코, 그리고 알카사바 도시투어를 끝으로 그라나다는 이만 마무리하려고 한다.
만약 스페인 남부를 갈 계획이 있으시다면 예쁘고 역사적 의미도 풍부한 그라나다에 방문해서 그 옛 시절로 다녀와보시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