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민 마린스키 무용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해변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두 명의 실루엣이 보인다(2023년 12월 9일 현재). 역광 사진이라 얼굴이며 표정이 드러나진 않지만, 행복한 표정,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분위기가 물씬. 둘은 누구? 아는 사람은 척이면 척. 그와 그의 친형,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다.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니 사진을 굳이 여기 함께 올리진 않겠지만, 기완 무용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면 아마도 스토리에서 봤을, 바로 그 사진이다. 인공지능(AI)에 "우애 좋은 형제의 사진을 보여줘"라고 하면 아마 이 사진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기민 무용수와 인터뷰를 한 건 지난해 8월 16일과 지난달 24일. 두 번 모두 기민 무용수는 친형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인터뷰에선 "형과 지난밤에 이야기하느라 너무 늦게 자버렸다"며 웃었고, 이번에도 형과 통화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런 식이다.
"형과는 거의 매일 통화를 해요. 얘기를 짧게 해도 깊이가 있어요. 형이 저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굳이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는 거죠. 서로가 서로를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형 김기완 무용수도 지난해 기자로 만났을 때와 지난달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만났을 때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제가 동생에게 약하긴 하죠"라고 웃기도 하고, "동생에게 많이 배운다"는 말을 하면서 진지하게 눈을 반짝이기도 했으니.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김기민을 김기민으로 지켜주는 건 김기완이고,
김기완을 김기완으로 지켜주는 건 김기민이라고.
둘은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같은 길을 걸어가며, 피를 나눈 형제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지난 회에 기민 무용수가 말했던, 탐독 중인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역시, 형도 열독 중이라고 한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기완 가는 데 기민 가고, 기민 가는 데 기완이 가는 셈.
김기민 무용수가 형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김기민에게 김기완은 등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 내가 떠나온 곳, 내가 가야 할 곳을 비춰주는 묵묵하지만 든든한 존재.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아는 존재.
기민 무용수가 걸어가는 길을 생각해 보자. 그가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건 2011년.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가방 메는 법까지 따라 하고 싶어 했을 정도의 스승인 이원국 무용수도 떠나, 부모형제도 떠나 이역만리에서 홀로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다. 말도 쉽지 않거늘, 실제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럼, 안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기민 무용수에게 이 길은 걷지 않을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발레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그에게, 클래식 발레의 본고장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건 사치가 아니었을까. 어떤 기회는 주어진 순간 바로 안다.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그에겐 마린스키 입단이 그러했을 터. 김연아 선수에게 올림픽이 그러했듯이.
마린스키 입단 후 그는 최연소이자 최초 아시아인 남성 수석 무용수가 된다. 입단 4년 후, 2015년의 일이다. 그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훌륭한 블라디미르 김, 마르가리타 쿨릭 선생님의 존재도 물론 컸지만, 형이라는 등대에 의지할 수 있는 바도 컸을 것.
그가 지난달 24일 들려준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한국 무용수들이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나라 밖으로 나가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죠. 저도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힘듦이 없었다고는 얘기는 못하죠.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항상 제 옆에는 형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형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수석 승급, 벌써 10년
기민 무용수는 내년, '발레 수프림 2024' 무대로 고국을 다시 찾는다. 청사진은 아직이지만, 기민 무용수를 구심점으로 세계의 내로라하는 무용수들이 기량을 펼친다. 지난해 서울 국립극장에서 1회를 성료한 '발레 수프림 2022'에서, 무대에 선 그는 행복해 보였다. 공연장을 찾은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도, "기민 씨가 무엇보다도 춤을 너무 행복하게 추는 게 느껴지고 보여서, 참 좋았다"라고 지인들에게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내년 공연은 어떨까, 질문을 던졌다. 다소 의외의 답이 나왔다. "이 글을 공연 관계자분들도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는데요. 저는 갈라 공연보다는 전막 공연이 많아졌으면 해요. 한국에 잘 알려진 '백조의 호수'나 '돈키호테'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전막 공연들이 많거든요. 그런 공연들을 좀 더 많이 한국에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음, 그럼 2024년 발레 수프림은 어떤 공연이 될까? 공연 특성상 갈라가 될 특성이 될 가능성은 크지만, 기민 무용수는 이렇게 확신했다. "몸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확고해요. 관객에게 다가가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어요."
발레는 사랑, 평화를 향하는 예술, 그래서 어렵다
그에게 "내후년(2025년)이 수석 승급 10주년이네요"라고 했더니 "아, 그런가요? 저도 몰랐던 건데, 진짜 그러네요"라는 답이 나왔다. 정작 본인은 매일에 충실하느라 10주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걸 쑥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성인 취미발레에 대한 생각을 묻는 건 다소 조심스러웠다. 다소 두렵기도 했다. 발레에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바치고 있는 무용수에게,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것에 대해 묻는 것이기에.
기우였다. 기민 무용수의 멋진 답을 그대로 옮긴다.
"나이가 많이 있으신 상태에서 시작하시는 거잖아요. 이 글을 읽는 분이 20대도 있으실 수 있고 40대, 60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발레를 운동으로 배우시면서 '늦었구나'라고 생각하신다면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그분들은, 제 꿈이시거든요."
꿈? 잘못 들었나? 취미발레인들이 기민 무용수의 꿈이라고? 어떤 의미일지는 아래 계속.
"20대에는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나 루틴들이 많아요. 하지만 연세가 조금 있으시다면, 의지만으론 되지 않잖아요.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도 많아지고요. 루틴이며 운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학원에 나오셔서 발레를 배우신다는 게 대단해요. 그런 면에서 그분들이 저의 꿈입니다. 제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분들이 지금 하시는 것처럼 저도 하고 싶거든요."
용기가 솟아오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어지는 그의 말.
"늦게 시작했다고 괴로워하지 마세요. 오히려, 지금 하고 계신 거에 엄청난, 큰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발레를 아는, 하는, 배우는 모든 이들의 꿈인 김기민 무용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의 화룡점정 다음말.
"용기를 잃지 마시고, 꾸준히 즐겁게 하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질문. 대체, 발레의 매력은 뭘까. 발레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게 되는 걸까.
그가 지난해 인터뷰에서 들려준 명언으로, 2회를 마무리한다.
“발레는 몸으로 말하는 언어이고, 언어는 소통을 위한 거잖아요.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고요. 그래서 저는 발레는 사랑, 그리고 평화 이런 단어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렵지만 아름다운 거겠죠.”
아름답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레. 하지만 오늘 쁘띠 알레그로를 말아먹었다 해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잊지 말자. 나와 우리의 즐거운 발레 라이프를, 무려 김기민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