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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Nov 26. 2023

부상이라 쓰고 성장통이라 읽는다, 발레리노 김기완

발라레 인생 3막: 무용수 이야기 3회 By Sujiney

예술의 전당에 내리는 비를 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공연장에 무슨 비냐고? 정확히 말하면, 빗방울처럼 흩날리는 땀방울이다. 객석 맨 앞줄에서 흩날리는 '땀 비'를 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대략 2015년 정도, 안무와 의상을 생각하면 작품은 '지젤'이었던 듯. 투르 앙 레르(tour en l'air), 공중으로 떠올라 연속 회전 점프를 하는 장면. 핀 조명을 받으며 땀을 흩뿌리는 김기완 수석 무용수를 보며 나도 모르게 등을 펴고 꼿꼿이 고쳐 앉았다. "이렇게나 힘든 거라고? 발레는 멋지고 예쁜 거 아니었어?" 발레를 잘 몰랐던 당시의 나에게, 꿀밤 한 대.

지난해 11월, 나는 김기완의 '땀 비'를 다시 보고 있었다. 이번은 예술의 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 '지젤' 공연을 앞두고 그를 인터뷰하기 전, 리허설을 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공연을 목전에 둔 이 리허설엔 특별 손님이 있었으니,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전 무용수이자 현 발레 미스트리스(지도자) 비비안 데쿠튀르였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지젤'의 본당이랄 수 있는 만큼, 데쿠튀르를 초빙해 공연의 완성도를 더하기 위함이었다. 데쿠튀르는 김기완 무용수에게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젤 쪽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와 같은 감정선 표현부터 점프의 동선까지, 다양한 조언이 이어졌다. 아래는 당시 기사 첫머리.


당시 썼던 기사 캡쳐.



대단한 건 그 조언, 일명 '코렉션(correction)'을 바로 받아들여, 소화가 아닌 승화를 해내는 무용수였다. 데쿠튀르가 이날 유난히 많이 한 말. "Oui, oui, c'est ca!"(그렇지, 그렇지, 그거예요!) 신이 난 데쿠튀르 미스트리스의 적극적 지도에 부응하는 김기완 무용수의 회색 티셔츠는 어느덧 땀에 젖어 검은색이 됐다. 리허설이 끝난 뒤, 그는 그날의 파트너였던 여성 무용수와 따로 동선과 감정선을 맞추는 회의를 한 뒤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감탄과 찬사를 늘어놓는 내게 그가 해준 말은 의외였다.

"2014년쯤이었던 거 같은데요, 제가 춤추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진짜... 세게 받은 적이 있어요. 제 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그전엔 '잘한다'라고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상을 보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왜 난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지? 진지하게 각성하고 반성했고, 더 잘 추겠다고 각오를 다졌어요."

2015년의 비처럼 흩날리던 땀방울, 그 사이 김기완의 진지한 눈빛엔 이유가 있었다.   




무대에 선 무용수에겐 대개 일종의 거룩함이 있다.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100%를 내어주고, 스스로엔 엄격한 이들에게 깃드는 아우리다. 무대에 서는 약 150분을 위해 이들은 거의 매일을 기본 바워크와 센터워크 클래스 훈련에 공연 리허설, 근력 및 코어 강화에 바친다. 그렇게 단련한 몸과 마음으로 무대에 오롯이 혼자 서서, 관객을 마주하며 몸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어렵고도 힘들고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쉽게,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는 것은 그래서, 대단하다.

김기완은 그런데도 인터뷰에서 자신을 게으르다며 '나무늘보'라고 표현했다. 팬데믹 때도 옥상에 댄스플로어를 깔고 연습을 계속했던 그가 게으르다니. 그렇게 부지런한 나무늘보가 어디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어진 그의 말.

"몸은 하루 만에, 한 달 만에 바뀌지 않잖아요. 꾸준히 하면 3~4년 뒤에 변화가 오죠. 중요한 건 단순한 연습 시간의 양이 아니라, 어떤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지금도 발레단 안팎의 많은 무용수들을 보며 계속 각성해요. 무대 경험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클래스에서도 많이 배웁니다."  


그런 그가 "나의 거울"이라 부르는 존재가 있으니, 세 살 터울 친동생 김기민 러시아 마린스키 무용단 수석 무용수다. 둘 사이 우애는 유독 각별한 걸로 소문이 자자하다. 김기완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동생도 마찬가지. 둘은 매일같이 통화한다. 김기민 무용수가 24일 추가 인터뷰를 위한 통화에서 제일 먼저 한 말도 "형님이 있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힘이 된다"였다.         


왼쪽이 동생 김기민, 오른쪽이 형 김기완 무용수. 국립발레단 동료 무용수였던 김윤식(윤식스포토)사진작가의 작품. 저작권 YOON6PHOTO



김기완 무용수가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했던 말을 복기해 본다.
"동생과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진짜 리허설은 부엌에서 하는 거’라는 선생님 말씀이에요. 설거지하다가도 동작과 표현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죠. 매번 공연이 끝난 뒤엔 항상 무언가가 바뀌어 있어요.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는 셈이죠."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니. 명언 덕후들이여, 밑줄 쫙.        



김기완 무용수는 올해 상반기 특히나 발레단의 맏형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부상을 입었고, 여름과 가을 공연 무대엔 오르지 못했다. 이번 브런치스토리 글을 위해 그에게 추가 인터뷰를 이번에 요청하면서도 조금 조심스러웠던 이유다. 그가 11월 25일, 연습이 끝난 뒤 전해온 답을 옮긴다. 먼저, 근황.

"상반기부터 '돈키호테' '지젤' '해적' 등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지냈고요. 중간에 국립발레단 60주년 기념 독일과 스위스 초청 해외 투어 일정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공연 스케줄 이외엔 평소와 똑같아요. 리허설하고 연습하고, 휴식하고요^^ 그런데 아쉽게 지난 6월에 피로 골절 진단을 받았어요. 진단을 받고 약 3개월 간 휴식기를 가졌어요. 사실 오래전에 이보다 더 큰 부상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휴식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동생도 한국에 있어서 마음적으로 위로도 많이 되었고요. 지금은 잘 회복을 했고 원래의 몸의 리듬을 찾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번 (12월) '호두까기 인형'이 복귀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의 '호두까기 인형' 무대도 기대가 크다. 사진 저작권은 국립발레단, 손자일 작가


무용수에게 부상이란 달갑지 않지만 때론 불가피한 손님이다. 어떻게 잘 달래서 치료하는지에 따라 부상은 때론 성장통도 될 수 있다. 김기완에겐 그러했다.

그가 이번 추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오래전 더 큰 부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입었던 아킬레스건 부상이다. 연습 중 무리했지만 계속 춤을 추는 걸 투혼이라고 생각해 연습을 강행하다 아킬레스건이 아예 끊어졌고, 2년을 쉬었다. 국립발레단 입단 후인 2009년에도 '호두까기 인형' 리허설 중 부상을 입어 수술을 했다. 그는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부상을 입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 멘털이 강해졌다"며 "큰 고비를 넘기고 감정 컨트롤을 잘하게 됐고, 부상을 피하는 법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매일경제 2014년 3월 11일 자 인터뷰).

그를 인터뷰하는 기사에서 꼭 쓰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그의 춤, 특히 파드되(pas de deux, 2 인무)에서 그의 춤이 사려 깊다는 것. 파트너 무용수를 배려하는 모습 때문에 '파드되 장인'이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 지난해 기사엔 그가 우연히 꼬마 발레리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걸 목격한 장면 등도 넣었다.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6392

김기완 무용수는 이제 국립발레단의 맏형이다. 발레단 안팎에서 신뢰가 두텁다. 그는 정작 "점점 꼰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갸우뚱했지만, 진짜 꼰대는 자기가 꼰대인 줄을 모르지.      

그에게 2024년에 성취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그가 갓 보내온 답을 그대로 옮긴다.
"특별히 새로운 걸 성취하고 싶은 욕심보다는, 올해보다 조금 더 성숙한 춤을 추길 원하고요. 그걸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범답안. 그가 동시에 많이 생각하는 건, 좋은 무용수이자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국립)발레단 50주년 갈라 공연 때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10년이 지났네요. 부상도 슬럼프도 겪었고 팬데믹도 거치면서 지난해부터 일종의 터닝포인트를 지나는 것 같아요. 발레단 60주년 기념 포럼에서도 많은 선배 무용수들 뵈면서 생각했어요.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고, 나도 더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죠. 발레도 결국 팀워크이니, 군무부터 주역까지 모두의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그가 닮고 싶은 선배는 누굴까. 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 사사했던 한국 발레리노 1세대, 이원국 무용수다. 지난해 10월 국립극장에서 이원국(56) 무용수가 '해적'의 알리 배리에이션을 소화해 냈을 때, 객석에서 유난히 큰 박수를 쳤던 인물이 있었으니, 김기완 무용수였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간 발레 단체들의 모임인 발레STP 갈라) 무대에서도 ‘해적’의 알리 역 솔로를 하시는 걸 보고 감명받았어요. 단순히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에 더해서, 안무도 더 어려운 걸로 고르셨죠.”   

나이뿐 아니라, 암을 이겨내고 무대에 현역으로 섰다는 것만으로도, 실로 대단한 무대였다. 그 무대를 보는 제자 김기완의 마음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또 그 이야기를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동생과 얼마나 많이 했을까. 발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스승과 제자 형제가 모두 순도 100%다.




이 시리즈의 공통 질문, 성인이 되어 발레를 배우는 이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런 답을 했다. 그대로 옮긴다.

"취미발레의 활성화는 그만큼 발레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거라고 생각이 돼요. 당연히 기쁜 일이고요. 이런 생각도 드네요. 저도 만약 취미로 발레를 접했다면? 그럼 조금 더 편안한 행복 발레를 하지 않았을까요^^ 취미발레를 하시는 모든 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발레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부상은 조심하시면 더욱 좋겠고요. 응원합니다."

실은 이 답을 받기 전, 오늘의 클래스에서도 말아먹고 말아 버린 쁘띠 알레그로 때문에 침울했던 마음. 이 답을 받고 싹 날아갔다. 그래 우린 모두 행복한 존재다. 게다가 김기완 무용수가 부상을 걱정해 주다니. 이 얼마나 사려 깊은지. 그의 말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발레를, 행복하게 즐기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예매는 잊지 말고.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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