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10시간째 고민 중이었다. 잡지 ‘the New Yorker’의 1년 구독권. 내 인생 대부분의 순간이 그렇듯, 오늘도 고민한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To be or not to be라는 고매한 문제가 아니라, to shop or not to shop이라는 말초적(이지만 내겐 중차대한) 문제다.
그러다 이 글을 만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지난 7일(현지시간) 게재된 외부 필진 칼럼이다. 이 글을 쓴 서른한 살의 엘리엇 댈런(Elliot Dallen)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칼럼이 게재된 날 숨을 거뒀다.
해당 칼럼의 캡처본. 저작권은 물론, 댈런 가족과 가디언에 있다. [가디언 캡처]
칼럼 제목은 이렇다.
At 31, I have just weeks to live. Here’s what I want to pass on.
난 31살이고 몇 주 후면 죽어요. 남기고픈 말이 있습니다.
이건 부제.
Now that there’s no longer any way to treat my cancer, I’ve been reflecting on what I want others to know about life and death.
암을 극복할 방법이 이젠 없다는 게 확실해졌고, 그사이 나는 생과 사에 대해 타인이 알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 숙고해왔습니다.
의역이다. 곧이곧대로 번역한 verbatim translation이 아니니 시비는 걸지 말아 주기를. 그러고 살기엔 인생 너무 짧다. 그럴 시간에 댈런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찌 보면 흔한 얘기다. 건강하고 전도유망하던 청년이 운명의 덫에 걸려 암 투병을 하다 스러지는 스토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토리는 힘이 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기에 갖는 소구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댈런이 보여준 긍정의 힘 때문 아닐까.
아래 그의 글에서 추출해온 에센스를 읽어보자.
먼저, 그가 두 번째로 건네는 조언이다. 첫 번째는 ‘감사하라’는 다소 평범하지만 우리가 너무도 잘 잊는 교훈.
Second, a life, if lived well, is long enough. This can mean different things to different people. It might mean travel. I’ve had the good fortune to be able do this, and can confirm that the world is a wonderful place full of moments of awe and amazement – soak up as much as you can. It may mean staying active, as much as possible – the human body is a wonderful thing. You only appreciate this when it starts to fail you. a life, if lived well, is long enough.
Look after your body because it’s the only one you have, and it’s bloody brilliant. Knowing that my life was going to be cut short has also changed my perspective on ageing. Most people assume they will live into old age. I have come to see growing old as a privilege. Nobody should lament getting one year older, another grey hair or a wrinkle. Instead, be pleased that you’ve made it. If you feel like you haven’t made the most of your last year, try to use your next one better.
마음 같아선 전체 글을 다 번역하고 싶지만, 약의 고통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마음이 너무 아파 못하겠다. 게다가 댈런이 암 투병으로 보낸 생의 마지막 시간은 간악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락다운(lockdown) 때문에 사실상의 감금생활이었다. 월급 받고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있는 게 나에겐 브런치의 장점이다. 대신, 전체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다.
그의 여동생은 이 기사에서 오빠에게 보내준 가디언 독자들의 격려와 성금이 큰 힘이 됐다고 전한다. 대문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들이 여동생과 댈런.
여기에서, 덧 하나.
이 칼럼 및 기사를 읽기 위해 가디언 홈페이지에 몇 번 들어가다 보면 아래와 같은 notice(공지)가 뜬다.
캡처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 요약하자면 “가디언의 신문 발행 부수는 줄어들고 있고 광고 매출은 줄고 있다. 우리는 각 기사에 과금을 하는 대신, 광고를 허용하기로 했기에 쿠키를 허용하셔야 한다. 또는 디지털 구독료를 내고 프리미엄으로 업그레이드하실 수도 있다.”
한국의 신문사에서 글밥 먹고사는 나로선 댈런의 글만큼은 아니어도 가슴을 때리는 글이다. 한국에선 이미 디지털 유료 기사는 요원함을 넘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가고 있다. 독자 탓만 하는 건 아니다. 안다. 오프라인 신문 구독은 무겁고 불편하다. 심지어 나조차 분리수거일엔 고민한다. 구독 신문 수를 줄여볼까. 하지만 지금 디지털 환경에선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공짜 기사들이 쏟아지지 않나. ‘택배 없는 날’처럼 ‘뉴스 없는 날’이라도 만들어봐야할까.
다시 댈런의 글로 돌아와서. 삶은 아름답고, 지금 이 순간은 소중하다. 나는 숨을 쉬고 있고, 석 달 후면 한 살 더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성취다.
그래서 나는 결제를 했다. 뉴요커 1년 구독권. 함께 딸려 오는 토트백 증정품이 탐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프라인 매체를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좋은 글을 읽으며 매일을 충실히 살아내고 싶다. 뉴요커를 읽고, 산책을 나가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 느끼게 해주는 이탈리아 배우 미켈레 모로네가 좋아한다는 Pasta a la Norma를 만들어 먹을 거다.
미켈레 모로네 얘기 안 하고 넘어갈 줄 알았지롱. 재택근무가 알려줬다. “야, 너도 요리할 수 있어." 근데 프라이팬 좀 닦을 걸ㅠ 역시 난 인스타 체질이 못됨 By SJ
원래는 ‘쎈 언니의 영어 글쓰기 feat. 뉴욕타임스’라는 글을 준비 중이었는데, 여기까지 써버렸다. 다음 주엔 쎈 언니와 함께 돌아오겠다. 기대하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