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우드워드 vs 트럼프 & 오역 논란

덕질로 외국어 공부, 22번째 브런치

by Sujiney

공항, 그중에서도 짐 찾는 곳은 평생의 우상을 만나기엔 최적의 장소가 못 된다. 13시간 비행을 마친 직후라면 더더욱. 지난해 10월 - 여전히 우리가 비행을 할 수 있었던 시절ㅠㅠ - 밥 우드워드를 만난 곳이 하필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의 짐 찾는 곳이었다. 우드워드는 한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고, 나는 워싱턴 DC 출장을 위해 막 도착했던 차였다. 같은 비행기였던 터라 짐 찾는 곳이 같았다. 캐리어를 내리기 위해 끙끙거리는 백발 신사가 우드워드라고 깨닫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뻔했다. 함께 있던 우드워드 부인은 “저기 당신 팬 또 있네”라는 듯한,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드워드가 누군가. 워싱턴포스트(WP)에 1971년 입사해 반세기 넘게 현직으로 뛰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역사를 썼다. 저널리즘 글쓰기의 바이블이자 정석이다. 불필요한 부사 없이, 최소한의 명사와 동사, 숫자만으로 펄떡이는 문장을 직조해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저서 ‘Fear’는 그의 발군의 취재력 때문에도 필독서이지만, 그의 힘 있는 문체 역시 일품이다. 그런 그를 짐 찾는 곳에서 (장거리 비행 후엔 제일 피곤할 때 아닌가 싶다) 만나다니.


왼쪽은 'Rage' 오른쪽은 'Fear'. 제목도 한 단어로 압축적으로 골랐다. 우드워드 답다.



예전 브런치 글에서 외국인 취재원들에게 세련되게 접근하는 법을 (온갖 잘난 척을 해대며ㅠ) 쓴 나이지만, 이 순간은 그냥 다짜고짜 달려가 이렇게 외쳤다.


“You must be Mr. Woodward! Right? That Bob Woodward!”


...쪽팔려.

(저급한 표현 죄송하지만, 그냥 그 표현이 여기에선 가장 적확하다.)13시간 태평양을 날아오느라 완전 피곤에 쩔어있는 76세 할아버지에게 급 다가가 한 말이라곤 저것밖에 없으니. 설상가상으로 하필 ‘Fear’를 부치는 짐에 넣어서 사인도 못 받았다. 우드워드는 나의 “저도 기자인데 진짜 팬이에요. ‘Fear’ 후속 편은 언제 나오나요?” 등의 두서없는 속사포 질문에 “Thank you” “Hopefully soon” 단답을 하곤 총총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따라가고 싶었지만 당시엔 의전도 겸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무단이탈은 상상 불가. 부인이 내게 보내줬던 미소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Fear’ 이후, 우드워드가 ‘Rage’를 냈다는 사실. 게다가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수 차례 인터뷰를 한 결과물이다. 교보에 예약을 바로 걸었지만 아뿔싸. 10월 초에나 우리 집 우편함에 도착한단다. 상세 리뷰 및 우드워드 스타일 글쓰기의 포인트는 그때를 기약.


워터게이트 특종 사건을 다룬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의 두 배우. 실제로 이렇게 잘생긴 기자들은 없다구욧, 이라고 쓰면 안 되겠지? [영화 공식 스틸컷]


‘Rage’가 반가운 사람은 나 말고도 많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포함될 것. 지난해 점심자리에서 “’Fear’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며 “후속이 궁금하다”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뿐만인가. 외교안보를 다루는 기자들이라면 그의 책은 필수로 읽어야한다. 그러다 보니 나오는 게, 오역 논란. 문제된 부분은 다음이다.


"He(Mattis) did not think that President Trump would launch a preemptive strike on North Korea, although plans for such a war were on the shelf. The Strategic Command in Omaha had carefully reviewed and studied OPLAN 5027 for regime change in North Korea - the U.S. response to an attack that could include the use of 80 nuclear weapons. A plan for a leadership strike, OPLAN 5015, had also been updated."


볼드로 표시된 부분을 두고 한국 언론 중 ‘보수’로 분류되는 매체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국이 북한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작전계획(작계) 5027을 검토했으며, 여기에는 핵무기 80개의 사용 가능성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일부 매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는 책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중략) 문맥상 북한이 핵무기 80개를 사용해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검토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거꾸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보도 내용은 오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핵무기를 80개나 쏠 필요가 있을까 싶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뭐가 맞을까. 원어민 북한 전문가인 채드 오캐럴(Chad O’Carroll)와 얘기를 나눠본 결과, 둘 다 틀리다. 혹은 둘 다 맞다.


문제가 된 부분을 직역하면 아래와 같다.


“오마하 소재 전략사령부는 북한의 정권 교체를 위해 작전계획 5027, 즉 핵무기 80기 사용을 포함할 수 있는 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했다.”


여기에서 소위 보수 매체는 핵무기 80기를 사용하는 주체를 미국으로, 소위 진보 매체는 북한으로 해석한 게 문제다. 그래놓고 "우리는 진실만을 쓴다""쟤네들이 거짓말했대요"라고 열심히 삿대질 중. 원문만으로는 불분명한 부분을 갖고, 한국 내부에서 서로 치고받는 상황인 셈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또는 북한 발 뉴스를 두고 한국이 두 갈래로 찢어지는 건 이제 그냥 (괴롭지만) 일상이니까.


중요한 건 팩트다. 채드 오캐럴의 말을 들어보자. 채드는 영국인으로 NK News라는 북한 전문 영문 매체를 설립한 북한 전문가다. 북한 내부에 중요한 소식통도 다수 있다. NK News가 때로 북한 외무성 등 대외 부문 간부들의 글을 게재할 수 있는 배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친북 매체인 것은 아니다. 그 밸런스를 칭찬해주고 싶은 매체다.


다시 우드워드로 돌아와서. 채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드워드 책엔 몇 가지 팩트 오류가 있었어.” 채드는 관련 기사도 썼다고 한다. 사실, 그는 우드워드 책을 두고 기사를 최근 여럿 썼는데, 그중 하나가 링크가 이것.


https://www.nknews.org/2020/09/us-reviewed-plans-to-use-nuclear-weapons-on-north-korea-strike-leadership/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이게 왜 오역 논란으로 번지는가.


우드워드라고 신이 아니다. 게다가 우드워드는 외교안보 분야는 전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쓴, 게다가 다른 이도 아니고 트럼프 및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해서 쓴 내용이라면,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 쪽은 특히나 한국 기자들이 더 잘 알 수 있다. 오역 논란을 제기하기보다는 팩트체크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 나온 김에, 우드워드 이번 책은 미국에서 오히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 첫째, 코로나19에 대해 트럼프가 downplay, 즉 위험을 알고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고 일부러 발언했다는 부분 때문이다. 니먼 재단(Nieman Foundation)은 지난주 페이스북 페이지에 “우드워드가 이 책을 지금에서야 펴낸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실었다. 코로나19로 미국인 사망자가 20만 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 내용을 바이러스 확산 후 반년여가 지난 9월에서야 낸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라는 지적이다.


둘째론 트럼프가 왜 굳이 우드워드와 인터뷰를 했을까, 그 저의에 대한 논란이다. 여기에 대해선 다음 뉴욕타임스(NYT)의 기사가 가장 잘 정리했다. 야마는 (앗 업계 용어 죄송, ‘핵심’ 정도의 뜻이다) “천성이 쇼맨인 트럼프로서는 워싱턴 저널리즘의 전설인 우드워드를 거절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우드워드가 내러티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대선을 얼마 안 남기고 스스로 덫을 놓았다”는 것.


https://www.nytimes.com/2020/09/10/us/politics/trump-woodward.html


트럼프 대통령, 재선 될까요? [NYT 캡처]


장문 기획 기사를 내는 매체인 애틀란틱(the Atlantic)에 따르면 이런 시각도 있다. 트럼프는 사업가 시절부터 우드워드에게 호감을 품었다고 한다. 그에게 인터뷰를 당하는 것을 일종의 사회적 지위 획득으로 여겼다는 것. 이번 책을 위한 인터뷰 제의 역시 그가 “왜 진작에 나에게 연락 제대로 안 했냐”며 반겼다고 한다. 해당 기사 링크는 여기.


https://www.theatlantic.com/ideas/archive/2020/09/how-read-woodward-book/616318/


헤드라인부터가 “트럼프는 우드워드와 빚지는 딜을 했다”다. 기사에 따르면 우드워드와 인터뷰를 하는 이들은 촘촘하고 두꺼운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그 인터뷰가 어떻게 활용되고, 어떤 기사 혹은 책이 나가는지에 관해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특히나 신중을 기울였다고 한다. 현명한 거다. 나도 인터뷰 기사 많이 썼지만, 사실 인터뷰 기사라는 건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우드워드라는 거물 언론인에게 한마디로 ‘낚였고’ 그런 계약서도 없이 덜컥 18번이나 인터뷰를 해줬고, 그가 마음대로 기사를 쓰게 했다는 것. 자업자득이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드워드 책이 어서 도착하길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은 책값이 유난히 많이 든다. 이사를 하면서 책에 깔려 다칠뻔한 뒤, “꼭 사야 할 책이 아니면 안 사겠다” 다짐했건만 무용지물. 국내에선 김연수 작가부터 정세랑 작가까지, 해외에선 밥 우드워드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핫한 신간 릴레이가 이어지니까. 코로나19에도 불구, 그나마 견딜만한 가을이다. 이 가을이 지나고 11월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될지 흥미가 아주 진진하다.


그때까지, 평온한 가을날 되시길.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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