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나, 신문 1면에 얼굴 나온 여자다.
그 신문이 경쟁지였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건 마치 삼성전자 직원이 애플 광고에, 국립발레단원이 유니버설발레단 작품에, 네이버 직원이 다음 홈페이지 대문에 어쩌다 나온 격.
그래도 뭐 어때.
1면 톱 사진이라니, 영광이다. 물론 내가 사진의 주인공 일리는 만무하다. 주인공은 피겨의 전설, 김연아 선수. 외신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답변을 하는 옆에 간신히 끼어 녹음기를 들이밀고 있는 나는, 가히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 또 어때. 무려 연아 선수와 함께 찍힌 사진이다. 가문의 영광.
증거사진. [Copyright 조선일보]
때는 2011년 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전의 막바지였다. 개최지 투표권을 갖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 앞에서 각 경쟁 도시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였다. 장소는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
IOC를 약 2년간 밀착 취재한 경험은 커리어뿐 아니라 인생을 퀀텀점프시켜준 계기가 됐다. 연아 선수뿐 아니라 지금은 대기업 회장 여러 명도 가까이 취재했다. 평생 갈 소중한 친구들도 만났다. 이 모든 것의 베이스는, 그렇다. 영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당시 내가 IOC 밀착 취재를 하게 된 걸 두고 말도 탈도 많았다. 스포츠의 ‘ㅅ’자도 모르는 나도 당황스러웠으니. 편집국 넘버2의 부름을 받고 “밴쿠버 올림픽 취재, 당장 준비해”라는 지시를 받고 내가 했던 말은 이거였다. “그런데, 저는, 축구 경기에 몇 명이 뛰는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요?” 넘버2(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셨다는;;)는 “너에게 경기 취재를 가라는 게 아니고, 스포츠 외교 현장을 취재하라는 거야”라며 웃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IOC를 취재할 기자가 필요했던 거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생 오지 않을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촉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IOC 취재.
세상 많은 소중한 일들이 그렇듯, 시작은 가시밭길이었다.
한국 스포츠 기자들에 문전박대당하는 건 일상.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내가 출세를 위해 이상한 수를 써서 기회를 만들었다고 뒷담화/따돌림. 여성인 것을 무기 삼아 기회를 따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외모가 출중하다는 칭찬으로 가려 들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었던 건, 좌천. 나를 오해한 어떤 높은 분의 조치였다. 그래도 좌천당한 2년은 또 다른 전화위복.
곡절은 괴로웠지만 그래도 더 소중한 인연들이 남았다. 한국 기자들에게 왕따 당하자 미국과 영국인 기자들과 어울릴 시간이 더 생겼으며, 유치위원회 취재원으로 만난 분들은 평생 갈 친구들이며 인생 선배들이다. 나 자신이 직업적으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했다는 기쁨까지.
숱한 감사의 순간 중에서도, 내가 훗날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도 떠올릴 시간.
2012년 7월 18일 오후, 영국 남부 작은 해안가 마을, 헤이스팅스(Hastings).
해안가 마을답게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내 손엔 반짝이는 금빛 올림픽 성화(聖火)가 들려있다. 개막이 코앞이던 런던 여름올림픽을 앞둔 성화 봉송 릴레이.
IOC 추천 덕에 성화 주자로 선정된 덕.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런던에서 헤이스팅스까지 와준 영국 친구, Andrew Iredale에겐 평생 감사해도 모자라다.
성화를 들고 달렸던 약 50m의 모든 순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생전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다니. 성악설을 믿음에도, 인류의 선의를 확인하는 듯한, 벅찬 순간.
IOC 추천을 받은 사연은 이랬다. 그해 봄, 느닷없이 IOC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Hey Sujin, you can run, right?(야 수진아, 너 잘 뛰지?)”라는 거다. 뭔 얘긴가 했더니 성화 주자로 추천해준다는 것. 마다할 이유가 무에 있으랴. 바로 땡큐 베리 머치를 외쳤다. 열심히 이것저것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나 뭐라나.
다른 동료 주자들의 스토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신 화상을 입고도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한 상이군인, 불치병을 극복해냈다고 믿기 어려운 환한 미소를 선사했던 10대 소녀 등, 모두가 희망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은 연아느님과의 1면 사진만큼이나 소중하다. 책을 내게 된다면 이들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거의 영국판 '인생 극장' 수준.
함께 달렸던 주자들. 10년 전이라니.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길. 회색 트레이닝복은 조직위원회 멤버들. by SJ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토종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영어를 공부해 이들과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결국 언어란 소통의 도구이고, 외국어는 소통의 폭과 깊이를 더해준다.
한 번으로도 감사한 성화봉송의 기회를 평창 올림픽에서도 누렸다. 정선에서 달렸던 50m 역시,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추억.
이날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결국, for the better, hopefully.
이 글을 읽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느끼실 수도 물론, 있다.
영어란 한국에서 소통의 도구라기보단, 대입 및 승진 등 사회 계급의 사다리 같은 존재가 되어 있으니. 영어가 모종의 특권의 가늠자처럼 자리 잡은 건 안타깝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대학이나 기업에 가기 위해 억지로 영어를 배우다 보니 영어는 자연스레 날개가 아닌 굴레처럼 됐다. 하지만, 원효대사님도 약 1500년 전에 말씀하시지 않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굴레를 날개로 바꾸는 것도,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름의 방법을 찾다 보면 언젠가 이렇게 되뇔 거다.
하마터면 못할 뻔했다, 영어.
물론 재능도 중요하다. 하지만 재능만 있다고 되진 않는다. 재능이 있는데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 재능은 부족해도 꾸준히 노력하는 건, 모두가 다 알 듯, 차이가 크다.
토종 영어로 영어신문에 입사했을 때 “맨땅에 헤딩”이란 비아냥을 들었고
토종 영어로 영어 책을 쓴다고 했을 때 “가능하겠어”라는 우려를 들었지만,
해냈다.
2016년 8월 삼성언론재단 강의. 거스 히딩크 감독 취재 경험을 나누고 있다. 성황에 깜놀. 히딩크 감독 스토린 다음 브런치에.
수많은 해외 인사들 인터뷰부터, ‘작가’라는 타이틀, '토종 영어 취재 시크릿'을 나누는 삼성언론재단 강연까지. 영어는 내게 날개를 달아줬다. 이젠 함께 날고 싶다. 토종이라 안 된다 말자. 토종영어도 요리하기 나름이다. 나름의 토종영어 레시피를 찾으면 된다. 모두가 미슐랭 셰프가 될 것도 없다.
나의 첫 책. 읽어주신, 읽어주실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더 멋진 일을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딱, 온다.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By SJ